사랑하는 사람을 옆에 두고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1999년 개봉한 일본 영화 《비밀》은 바로 그 불가능한 상황을 정면으로 보여줍니다.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오래전 어느 겨울이었고, 솔직히 그때는 히로스에 료코가 예쁘다는 이유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다시 봤을 때는 전혀 다른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빙의 설정이 만들어내는 불가능한 가족 구도이 영화의 장치는 단순하지만 파괴력이 큽니다. 버스 사고로 어머니 나오코와 딸 모나미가 동시에 위기에 처하고, 나오코의 영혼이 모나미의 육체로 이동합니다. 이른바 빙의(憑依), 즉 한 영혼이 다른 육체에 깃드는 현상인데, 영화는 이걸 공포가 아닌 가족 멜로드라마의 소재로 활용합니다. 제가 봤을 때는 "이게 가능한 이야기인가"보..
솔직히 저는 이 영화가 로맨스인 줄 알고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제작진 재회라는 홍보 문구, 사랑스럽게 모여 있는 세 배우의 포스터. 그 조합이면 당연히 청춘 로맨스를 떠올리죠. 그런데 막상 앉아서 본 작품은 연애보다 훨씬 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였습니다. 사후 세계를 배경으로 한 성장 판타지라는 사실을 모른 채 입장했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으로 엔딩 크레딧을 바라봤습니다. 제작 배경영화 짝사랑 세계는 도이 노부히로 감독과 사카모토 유지 각본가가 2021년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이후 다시 손을 잡은 작품입니다. 일본에서는 2025년 4월 4일 개봉했고, 국내에는 약 14개월 뒤인 2026년 6월 24일에야 들어왔습니다. 이 정도면 꽤 늦깎이 개봉이죠.두 사람..
마당만 한 정원에서 30년을 살면 행복할 수 있을까요. 보통은 갇혔다고 느끼거나, 지루해서 미칠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 94세의 화가 쿠마가이 모리카즈는 그 안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엔 설정 자체가 과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엔딩 장면에서 실제 정원의 크기를 확인하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마당만 한 공간이 우주가 된 사연영화 은 1974년을 배경으로, 실존했던 일본 서양화가 쿠마가이 모리카즈(1880~1977)의 노년 일상을 그대로 담은 듯한 작품입니다. 극적인 반전도, 뚜렷한 갈등도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정원을 산책하고, 점심 뒤엔 낮잠을 자고, 저녁이 되면 화실로 들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전부입니다.저는 원래 이런 슬로우 시네마 장르를 좋아합..
마지막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영화 내내 스즈키가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그 확신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이니시에이션 러브》는 포스터부터 "반전이 있다"고 대놓고 광고하는 작품인데, 정작 그 반전이 어디서 올지는 몰랐습니다. 80년대 배경 로맨스라는 달콤한 포장지 속에 꽤 놀라운 반전이 숨어 있었습니다. 반전 결말 영화를 보는 동안 저는 내내 스즈키에게 야유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소심하고 뚱뚱했던 청년이 다이어트에 성공해 핫가이로 거듭나더니, 장거리 연애에 지쳐 직장동료 미야코에게 흔들리는 전형적인 배드가이 서사. 너무 익숙한 클리셰라서 의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는 바로 이 공식에 길들여진 관객 심리를 정확히 겨냥합니다. 핵심 반전은 간단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