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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옆에 두고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1999년 개봉한 일본 영화 《비밀》은 바로 그 불가능한 상황을 정면으로 보여줍니다.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오래전 어느 겨울이었고, 솔직히 그때는 히로스에 료코가 예쁘다는 이유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다시 봤을 때는 전혀 다른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빙의 설정이 만들어내는 불가능한 가족 구도
이 영화의 장치는 단순하지만 파괴력이 큽니다. 버스 사고로 어머니 나오코와 딸 모나미가 동시에 위기에 처하고, 나오코의 영혼이 모나미의 육체로 이동합니다. 이른바 빙의(憑依), 즉 한 영혼이 다른 육체에 깃드는 현상인데, 영화는 이걸 공포가 아닌 가족 멜로드라마의 소재로 활용합니다. 제가 봤을 때는 "이게 가능한 이야기인가"보다 모나미라는 존재가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 더 마음에 걸렸습니다. 껍데기만 남은 딸이라는 게 19살의 제 눈에는 가장 비극적인 부분이었거든요.
아버지이자 남편인 헤이스케(코바야시 카오루)는 딸의 몸속에 아내 나오코가 살아있다는 걸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이 수용이 오히려 문제의 시작입니다. 정체성 혼란(identity confusion)이란 개념이 있는데, 이는 한 개체가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고 역할 사이에서 분열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헤이스케도, 히로스에 료코가 연기하는 그 존재도 이 혼란 안에 내내 갇혀 있습니다. 아내로 부를 수도, 딸로 대할 수도 없는 상황. 섹슈얼리티의 문제까지 겹치면서 헤이스케는 결국 부부 관계를 포기합니다. 이 장면이 저한테는 꽤 인상적이었는데, 그냥 "못 하겠다"가 아니라 딸의 몸에 그럴 수 없다는 남자의 윤리적 자기 검열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 소설은 철저하게 헤이스케의 시점에서 전개됩니다. 이 때문에 나오코의 내면이나 행동 동기가 독자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평이 많습니다. 반면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영화 버전은 나오코의 심리 상태와 행동의 경위를 훨씬 촘촘하게 그려냅니다. 원작 소설에서는 헤이스케가 준 결혼반지를 녹여 새 반지로 만드는 장면이 나오지만, 영화에서는 그 반지를 아무도 모르게 혼자 간직하는 것으로 처리합니다. 저는 영화의 이 선택이 더 맞는 것 같았습니다. 녹이는 행위보다 몰래 갖고 있는 행위가 훨씬 더 나오코라는 캐릭터의 죄책감과 미련을 동시에 보여주니까요.
나오코의 결말과 히로스에 료코가 남긴 것
38살에 다시 본 《비밀》은 솔직히 이 영화가 나오코를 얼마나 냉정하게 그리고 있는지 새삼 느끼게 했습니다. 젊어진 몸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점점 자신만의 시간을 쌓아가는 나오코. 그 사이 헤이스케는 도청까지 하며 그녀를 붙잡으려 합니다. 도청이라는 행위 자체는 분명 잘못이지만, 그 외로움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자신은 바람 한 번 피우지 않고 아내만 바라보는데, 아내는 딸의 몸을 빌려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까요.
영화의 진짜 반전은 이겁니다. 헤이스케와의 갈등이 깊어진 뒤 나오코는 '모나미의 의식이 돌아왔다'는 연기를 선택합니다. 이 결단을 심리학적으로 풀면 자기희생적 정체성 재구성(self-sacrificial identity reconstruction)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쉽게 말해 자신이 사라지는 것처럼 위장함으로써 상대방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결정입니다. 나오코는 이후 어느 때는 나오코로, 어느 때는 모나미로 교대하며 살아가다가, 결국 헤이스케에게 마지막 이별을 고하고 영영 모나미로만 살아갑니다.
그리고 결혼식 장면. 모나미는 사고 당시 버스기사의 아들과 결혼식을 올리고, 헤이스케가 에스코트합니다. 식이 끝나고 모나미가 무의식적으로 헤이스케의 턱을 만지는 그 한 컷. 제가 이 장면에서 꽤 오래 멍했습니다. 나오코는 살아생전 헤이스케의 면도 상태를 사랑스럽게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고, 그 몸의 기억이 아무것도 모르는 모나미의 손을 통해 흘러나온 거죠. 무의식적 신체 기억(procedural memory)이란 개념이 있는데, 이는 의식적인 노력 없이도 신체가 반복된 행동 패턴을 자동으로 재현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영화는 이 개념을 감정적 클라이맥스로 가장 아름답게 사용했습니다.
히로스에 료코가 이 역할을 해냈다는 것도 결코 작은 성취가 아닙니다. 딸이기도 하고 어머니이기도 한 존재, 그 경계선을 같은 얼굴로 연기해야 했으니까요. 1999년 당시 일본에서 《러브레터》와 함께 감성 멜로 붐을 이끌었던 배경을 생각하면, 히로스에 료코라는 배우의 신비스러운 이미지가 이 애매한 존재감을 오히려 완성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타키타 요지로 감독은 이 캐스팅 하나로 이미 절반은 성공한 셈입니다.
저는 결말에 대해서는 여전히 맘에 들지 않습니다. 물론 나오코 입장에서 헤이스케를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그 선택이 헤이스케에게 진짜 위로가 되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사랑했다면 끝까지 속이거나, 아니면 끝까지 함께하거나. 그 중간 어딘가에서 멈춰버린 나오코의 선택은 헤이스케에게는 결국 아무것도 완결되지 않은 채 살아가게 하는 형벌처럼 느껴졌습니다. 영화로서의 완성도는 인정하지만, 인간으로서의 나오코에게는 쉽게 공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이 점에서 원작 소설의 건조함이 어쩌면 더 정직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19살에 본 《비밀》과 38살에 본 《비밀》이 이렇게까지 다를 줄은 몰랐습니다. 처음에는 모나미가 사라졌다는 부재가 마음에 걸렸고, 다음에는 헤이스케의 고독이 훨씬 크게 다가왔습니다. 같은 영화가 보는 사람의 나이와 경험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보여준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20년이 넘도록 회자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나오코의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사랑한다면 그 선택을 끝까지 상대에게 숨기든지, 아니면 처음부터 함께하든지 해야 했다고. 중간에서 이별을 통보하고 자신의 삶을 이어간 나오코는, 헌신처럼 포장되었지만 실제로는 헤이스케 혼자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한 채 살게 만든 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