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원작 영화를 볼 때마다 드는 고민이 있습니다. 소설에서 충격적이었던 반전이 영상으로는 왜 그렇게 평범하게 느껴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영화 〈블랙 쇼맨〉을 보고 나서도 같은 질문을 안고 극장을 나왔습니다. 원작을 먼저 읽어서 더 그랬을 수도 있지만, 솔직히 이건 원작 독자가 아니라도 한번쯤 생각하게 될 지점이라고 봅니다. 후쿠야마 마사하루라는 선택히가시노 게이고와 후쿠야마 마사하루라는 이름이 함께 붙으면 반사적으로 〈갈릴레오〉 시리즈의 유가와 마나부가 떠오릅니다. 제가 그랬고, 아마 일본 관객 대부분도 그랬을 겁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생기는 질문은 단순합니다. "이번 캐릭터는 유가와와 얼마나 다른가?"유가와 마나부는 과학과 논리로 사건을 해부하는 인물입니다. 반면 가미오 다케..
갈릴레오 시리즈 9번째 작품 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500페이지 넘는 원작을 2시간짜리 영화로 압축한 작품입니다. 원작을 먼저 읽고 극장에 들어간 저로서는, 첫 장면부터 '이걸 어떻게 2시간 안에 담겠다는 거지?'라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 걱정은 반쯤 맞고 반쯤 틀렸습니다. 원작과 영화, 갈릴레오일반적으로 원작 소설을 영화화하면 "영화가 원작보다 못하다"는 평이 따라붙는데, 제 경험상 는 단순히 '못하다'는 말로 정리하기 어렵습니다. 방향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원작이 공들이는 것은 알리바이 트릭(alibi trick)입니다. 여기서 알리바이 트릭이란, 용의자 전원에게 완벽한 알리바이가 성립하도록 설계된 범죄 구조를 말합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을 떠올리게 하는 이 구조를 히가시노 게이고는 현대 일..
사랑하는 사람을 옆에 두고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1999년 개봉한 일본 영화 《비밀》은 바로 그 불가능한 상황을 정면으로 보여줍니다.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오래전 어느 겨울이었고, 솔직히 그때는 히로스에 료코가 예쁘다는 이유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다시 봤을 때는 전혀 다른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빙의 설정이 만들어내는 불가능한 가족 구도이 영화의 장치는 단순하지만 파괴력이 큽니다. 버스 사고로 어머니 나오코와 딸 모나미가 동시에 위기에 처하고, 나오코의 영혼이 모나미의 육체로 이동합니다. 이른바 빙의(憑依), 즉 한 영혼이 다른 육체에 깃드는 현상인데, 영화는 이걸 공포가 아닌 가족 멜로드라마의 소재로 활용합니다. 제가 봤을 때는 "이게 가능한 이야기인가"보..
히가시노 게이고가 2026년 7월, 68세로 별세했습니다. 부고를 접한 순간,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책이 아니라 한 장면이었습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신, 그리고 그 뒤에 조용히 서 있던 한 남자. 영화 은 제가 두 번 봤는데도 볼 때마다 결말에서 말을 잃게 되는 작품입니다. 추리 영화인 줄 알았다가, 끝날 때쯤엔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추리소설 팬들 사이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를 저평가하는 시각이 있다는 걸 찾아보고 알았습니다. '대중 취향에 맞춘 작가'라는 식의 평가인데, 솔직히 저는 그게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수상 이력만 따져봐도 그렇습니다. 1999년 소설 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고, 2006년에는 으로 나오키상과 본격미스터리 대상을 동시에 석권했..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뇌사는 죽음으로 볼 수 있는가"를 처음 토론했을 때, 저는 꽤 자신 있게 손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인어가 잠든 집』을 읽고 나서 그 자신감이 조금 흔들렸습니다. 뇌사 판정을 받은 딸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 엄마 카오루코의 이야기는, 교과서 속 윤리 논쟁이 실제 삶에 부딪혔을 때 얼마나 복잡해지는지를 정면으로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뇌사, 죽음의 기준이 영화의 핵심은 단 하나입니다. "뇌사(腦死, brain death)는 죽음인가?" 여기서 뇌사란 뇌간을 포함한 전뇌의 기능이 비가역적으로 정지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뇌 전체가 돌이킬 수 없이 기능을 멈춘 것으로, 인공호흡기 등 의료 기기의 도움을 받으면 심장은 뛰고 혈액 순환은 유지됩니다...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볼 타이밍을 잘못 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세상을 떠난 직후였고,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그 타이밍이 영화를 다른 무게로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가가 교이치로 시리즈의 사실상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 〈기도의 막이 내릴 때〉는 사건이 해결된 뒤에도 마음 한켠이 묵직하게 가라앉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가가 교이치로영화는 한 여인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가족을 두고 떠나 홀로 살다 심장마비로 숨진 여인, 그리고 그 소식을 뒤늦게 전해받는 아들. 그 아들이 아베 히로시가 연기하는 가가 교이치로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저는 이 영화가 단순한 미스터리물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습니다.가가 교이치로는 오랫동안 니혼바시 경찰서에 머물며 어머니의 ..
살인 현장에서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시체를 호수에 던진 부모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자녀의 입시를 지키기 위해서요. 처음 이 설정을 접했을 때 너무 황당했습니다.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너무 나간 거 아닌가 싶었죠.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은 달랐습니다. "이게 정말 소설 속 이야기인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을 바탕으로 아오야마 신지 감독이 연출한 (2004)은 단순한 추리물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어른들의 광기를 해부하는 영화입니다. 호숫가 별장, 집단광기영화의 배경은 일본 명문 사립 중학교 입시를 앞둔 세 가족이 모인 외딴 호숫가 별장입니다. 이들은 학원 강사 츠쿠미 마사루(도요카와 에츠시)를 초빙해 아이들의 면접을 집중 훈련하는 합숙을 진행 중이었습니다.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
솔직히 저는 이 영화가 로맨스인 줄 알고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제작진 재회라는 홍보 문구, 사랑스럽게 모여 있는 세 배우의 포스터. 그 조합이면 당연히 청춘 로맨스를 떠올리죠. 그런데 막상 앉아서 본 작품은 연애보다 훨씬 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였습니다. 사후 세계를 배경으로 한 성장 판타지라는 사실을 모른 채 입장했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으로 엔딩 크레딧을 바라봤습니다. 제작 배경영화 짝사랑 세계는 도이 노부히로 감독과 사카모토 유지 각본가가 2021년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이후 다시 손을 잡은 작품입니다. 일본에서는 2025년 4월 4일 개봉했고, 국내에는 약 14개월 뒤인 2026년 6월 24일에야 들어왔습니다. 이 정도면 꽤 늦깎이 개봉이죠.두 사람..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AI 이야기를 이렇게 정면으로 다룰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상실과 가족을 다루는 감독이라는 인상이 워낙 강했으니까요. 그런데 보고 나서 한참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생각보다 훨씬 불편하고 무거웠기 때문입니다. 배경, 죽은 아이를 닮은 로봇영화의 배경 설정 자체가 이미 꽤 도발적입니다. 7살짜리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부부, 오토네와 켄스케. 그들에게 리버스(REbirth) 프로젝트라는 업체의 안내가 도착합니다. 여기서 리버스 프로젝트란 사망한 가족의 사진, 영상, 음성 데이터를 학습시켜 외형과 말투까지 동일하게 구현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제공하는 서비스입니다. 쉽게 말해 죽은 사람을 기술로 복원하는 것입니다.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3시간짜리 일본 영화라길래 중간에 졸 각오를 했는데, 가부키 공연 장면이 나올 때마다 오히려 더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이상일 감독의 2025년작 《국보(國寶)》는 일본 역대 실사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작품입니다. 한 남자가 야쿠자의 아들로 태어나 인간국보에 오르기까지, 50년의 시간을 그 러닝타임 안에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줄거리1964년 나가사키, 소년 키쿠오는 눈앞에서 야쿠자 보스인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복수심에 칼을 쥐려던 그를 붙잡은 건 아버지의 보호를 받던 가부키 거장 한지로 하나이였습니다. 이후 키쿠오는 오사카로 향해 한지로의 집에 맡겨지고, '정직하고 평범하게 살라'던 어머니의 유언을 품은 채 역설적이게도 가장 치열한 가짜 세계인 가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