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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12)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이시가미,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가 2026년 7월, 68세로 별세했습니다. 부고를 접한 순간,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책이 아니라 한 장면이었습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신, 그리고 그 뒤에 조용히 서 있던 한 남자. 영화 은 제가 두 번 봤는데도 볼 때마다 결말에서 말을 잃게 되는 작품입니다. 추리 영화인 줄 알았다가, 끝날 때쯤엔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추리소설 팬들 사이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를 저평가하는 시각이 있다는 걸 찾아보고 알았습니다. '대중 취향에 맞춘 작가'라는 식의 평가인데, 솔직히 저는 그게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수상 이력만 따져봐도 그렇습니다. 1999년 소설 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고, 2006년에는 으로 나오키상과 본격미스터리 대상을 동시에 석권했..

카테고리 없음 2026. 9. 29. 10:15
상자 속의 양 리뷰 (배경, 애도의 윤리, AI 공존)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AI 이야기를 이렇게 정면으로 다룰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상실과 가족을 다루는 감독이라는 인상이 워낙 강했으니까요. 그런데 보고 나서 한참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생각보다 훨씬 불편하고 무거웠기 때문입니다. 배경, 죽은 아이를 닮은 로봇영화의 배경 설정 자체가 이미 꽤 도발적입니다. 7살짜리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부부, 오토네와 켄스케. 그들에게 리버스(REbirth) 프로젝트라는 업체의 안내가 도착합니다. 여기서 리버스 프로젝트란 사망한 가족의 사진, 영상, 음성 데이터를 학습시켜 외형과 말투까지 동일하게 구현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제공하는 서비스입니다. 쉽게 말해 죽은 사람을 기술로 복원하는 것입니다.오..

카테고리 없음 2026. 9. 24. 10:32
52헤르츠 고래들 (제목의 의미, 원작 비교, 연대)

2021년 일본 서점 대상 1위를 차지한 소설이 원작입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저는 기대를 품고 영화를 봤는데, 솔직히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원작 소설을 새벽에 읽다가 눈물까지 흘렸던 저로서는, 같은 이야기인데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게 꽤 당황스러웠습니다. 제목의 의미 보통의 고래는 12~25헤르츠 대역의 음파로 서로 의사소통합니다. 그런데 1989년, 북태평양 어딘가에서 52헤르츠에 가까운 고래 소리가 포착되었습니다. 여기서 52헤르츠란, 다른 고래들이 전혀 감지할 수 없는 주파수대를 의미합니다. 아무리 울어도 아무도 듣지 못한다는 뜻이죠. 그래서 이 존재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라 불리게 되었습니다.영화는 이 고래를 단순한 배경 지식으로 소개하는 게 아니라, 주인공 키코와 안..

카테고리 없음 2026. 9. 18. 12:28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내면의 목소리, 두 번째 해방, 홀로라이프)

처음 흘려 봤다가, 바로 다시 보게된 영화. 뮤지컬인지 판타지인지 코미디인지 종잡을 수 없었는데, 그냥 두 번째로 보다가 그만 제대로 빠져버렸습니다. 상실 이후에 찾아오는 진짜 자유, 그 이야기를 담은 영화 (2020, 오키타 슈이치 감독)입니다. 내면의 목소리가 보내는 신호어떤 신문 기사에서 이 영화를 꽤 거창하게 소개하길래 바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첫 장면부터 당황했습니다. 조용히 앉아 있던 70대 노부인 모모코 앞에 고향 사투리를 쓰는 낯선 남자 셋이 나타나고, 갑자기 그들의 연주에 맞춰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춤을 추기 시작하는 겁니다. "역시 마케팅에 낚였나" 싶어서 한동안 멍하니 화면만 바라봤습니다.그런데 두 번째로 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그 세 남자는 모모코의 내면의 자아, 정확히 말하..

카테고리 없음 2026. 9. 15. 10:48
아주 긴 변명 (죄책감, 상실, 고백)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아내를 잃은 남편의 회한을 그린 영화라길래 잔잔한 위로가 담긴 작품을 기대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제 안에 숨어 있던 비겁한 구석이 들켜버린 느낌이었습니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2016년작 은 상실을 겪고도 울지 못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가 어쩌면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죄책감, 사치오라는 인물영화를 보면서 첫 장면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헤어숍을 운영하는 아내 나츠코가 남편 사치오의 머리를 다듬어주는 장면인데, 오가는 말들이 칼날처럼 서늘합니다. 사치오는 아내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비틀며 생채기를 내고, 나츠코는 끝내 웃으며 자리를 마무리하고는 친구 유키와 버스 여행을 떠납니다.그 밤, 사치오는 기다렸다는 듯이 불륜 상대를 집으로 불러들..

카테고리 없음 2026. 9. 14. 10:07
꿈팔이 부부 사기단 (인물분석, 연출의도, 열린결말)

가게가 불타고 남은 건 재뿐이었습니다. 5년을 쏟아부은 공간이 하룻밤 새 사라진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은 그 질문에서 출발하는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장면 하나하나가 쉽게 넘어가지지 않았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선택하는 매 순간이 너무 실감났기 때문입니다. 인물분석이 영화는 정말 예상 밖이었습니다. 평범해 보였던 부부가 사기를 치기로 결정한 것도 놀라웠는데, 실제로는 두 사람의 내적 균열을 정밀하게 해부하는 심리극에 가까웠습니다. 영화의 긴장감은 사기 현장이 아니라 칸야와 사토코 사이의 감정이 조금씩 어긋나는 순간들에서 발생합니다.니시카와 감독은 인터뷰에서 "모든 인간은 선악의 양면을 동시에 갖는다"고 밝혔습니다. 이것이 이 영화의 핵심 전제입니다. 전작 의 타케..

카테고리 없음 2026. 9. 13. 10:07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비극적 연출, 사랑의 집착, 나카타니 미키)

이건 정말 예상 밖이었습니다. 포스터만 보고 그냥 화려한 일본 뮤지컬 영화겠거니 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한 여성의 비극적 생애를 원색 세트와 노래로 포장한 작품입니다. 형식은 동화인데 내용은 지독해서, 그 간극이 오히려 더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비극적 연출처음 뮤지컬 시퀀스가 터졌을 때 저는 당황했습니다. 마츠코가 교사직을 잃고 집에서 쫓겨나는 장면인데, 갑자기 형광색 배경에 춤이 시작됩니다. 처음엔 '이게 뭐지?' 싶었는데, 두 번째 노래가 나올 때쯤엔 무릎을 쳤습니다. 이 연출이 전략이었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나카시마 데쓰야 감독은 이 영화에서 키치(Kitsch) 미학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키치란 본래 저급하거나 과잉된 감성을 의미..

카테고리 없음 2026. 9. 11. 10:50
이키가미 리뷰 (국가번영유지법, 후지모토, 전체주의)

국가가 당신의 죽음을 미리 결정해뒀다면, 나머지 24시간을 어떻게 쓸 것 같습니까. 2008년 일본 영화 《이키가미》는 바로 그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처음 이 설정을 접했을 때 저는 너무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 황당함이 어느 순간부터 '지금 우리 사회랑 뭐가 다르지?'라는 불편한 질문으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가번영유지법, 말이 되는 소리인가영화의 핵심 설정은 '국가번영유지법'입니다. 여기서 국가번영유지법이란 정부가 사회 생산성과 생명 인식 제고를 명분으로, 18~24세 청년 1,000명 중 1명을 강제로 사망하게 만드는 법을 의미합니다. 방법은 교묘합니다. 초등학교 입학 시 예방접종 주사에 나노캡슐을 몰래 심어두고, 선발된..

카테고리 없음 2026. 9. 8. 10:18
도쿄 소나타 (가족, 단절, 드뷔시 달빛)

이 영화의 포스터는 얼핏보면 평범한 가족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따뜻한 가족 이야기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대 보면서 '아 이 가족은 평범하지 않구나'를 느꼈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만든 2008년작 는 가족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조금 불편한 그리고 정직한 영화입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단절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포스터 속 네 사람의 시선이었습니다. 서로를 보지 않습니다. 각자가 완전히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고, 그 거리감이 영화 내내 이어집니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이것을 말로 설명하는 대신, 카메라 위치로 보여줍니다. 가족이 처음으로 한 식탁에 둘러앉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계단 뒤에 자리를 잡습니다. 난간이 화면을 가로막고, 관객은 식사하는 가족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6. 9. 7. 10:17
멋진 세계 (낙인효과, 사회적 재통합, 갱생)

전과자가 마트에서 장을 보면 도둑이 되고, 면허를 다시 따려 하면 폭력적인 사람이 됩니다. 사회는 "새로 시작하라"고 말하면서도 그 시작의 문을 번번이 닫아버립니다. 영화 를 보고 나서 제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정말 변하기를 원하는 건지, 아니면 변했다는 증명을 끝없이 요구하고 싶은 건지. 낙인효과낙인효과(Labeling Effect)란, 한 번 범죄자로 규정된 사람이 그 꼬리표 때문에 사회 재편입 자체를 막히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쉽게 풀면, 사람이 변해도 사회의 기억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영화에서 미카미 마사오가 겪는 일들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이 개념이 이론이 아니라 구청 창구와 마트 계산대 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미카미는 13년 만기 ..

카테고리 없음 2026. 9. 5.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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