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21년 일본 서점 대상 1위를 차지한 소설이 원작입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저는 기대를 품고 영화를 봤는데, 솔직히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원작 소설을 새벽에 읽다가 눈물까지 흘렸던 저로서는, 같은 이야기인데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게 꽤 당황스러웠습니다.

 

52헤르츠 고래들 (제목의 의미, 원작 비교, 연대)
52헤르츠 고래들 (제목의 의미, 원작 비교, 연대)


제목의 의미 

보통의 고래는 12~25헤르츠 대역의 음파로 서로 의사소통합니다. 그런데 1989년, 북태평양 어딘가에서 52헤르츠에 가까운 고래 소리가 포착되었습니다. 여기서 52헤르츠란, 다른 고래들이 전혀 감지할 수 없는 주파수대를 의미합니다. 아무리 울어도 아무도 듣지 못한다는 뜻이죠. 그래서 이 존재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이 고래를 단순한 배경 지식으로 소개하는 게 아니라, 주인공 키코와 안고, 그리고 이름도 제대로 불리지 못하는 소년에게 직접 겹쳐 놓습니다. 누구도 내 주파수를 못 듣는다고 느끼는 존재들. 그 느낌을 제목 한 줄로 이렇게 압축해 낸 건 아주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원작 소설을 읽으면서 제목의 의미를 처음 알게 됐을 때,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52헤르츠 고래들'이 복수형인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존재가 사실은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 서로의 주파수를 들어주는 이가 있다는 것. 제목 하나가 그 주제 전체를 담고 있습니다.


원작 비교 

영화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 제가 기대했던 건 스기사키 하나의 캐스팅이었습니다. <행복 목욕탕>에서 봤을 때부터 이 배우가 가진 무게감이 좋았거든요. 시손 쥰의 안고 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캐스팅 자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구조였습니다. 영화가 키코의 과거사, 즉 어머니로부터 받은 정서적 학대와 가스라이팅에 집중하다 보니, 안고와 키코 사이의 연대감이 충분히 쌓이질 않았습니다. 여기서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란, 상대방의 현실 인식을 왜곡시켜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심리적 조종 방식을 말합니다. 키코가 어머니의 사랑을 믿으면서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소설에서는 이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훨씬 촘촘하게 묘사됩니다. 안고가 키코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발견하고, 그래서 무작정 끌어당기듯 그녀를 지키려 드는 그 감정의 결이 영화에서는 많이 생략됐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이게 뭔 막장이냐"는 생각이 솔직히 들었는데, 소설을 읽은 뒤라 더 아쉬웠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일본 서점 대상(本屋大賞)은 전국 서점 직원들이 직접 투표로 선정하는 상입니다. 판매 실적이나 비평이 아닌, 실제로 책을 권하는 사람들의 선택이기 때문에 '이야기의 재미'에 대한 신뢰도가 높습니다. 그 재미를 영화 러닝타임 안에 다 담는 건 애초에 어려운 과제였을 수도 있습니다.


연대 

영화에서 제가 가장 좋았던 장면은 키코가 안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며 우는 장면입니다. 학대를 해도 그래도 사랑했다며 흘리는 눈물. 안고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안아줍니다. 이 장면만큼은 영화가 소설의 감동을 제대로 옮겼다고 느꼈습니다.

트랜스젠더인 안고가 키코의 구원자로 서는 설정을 두고, 이를 여성 연대로 볼 수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안고는 스스로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성별 정체성이란, 자신이 속한다고 느끼는 성별에 대한 내적 느낌을 말합니다. 그러니 '여성 연대'로 단순화하면 안고의 정체성을 다시 지워버리는 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보다 이 질문 자체가 이 영화가 던지는 화두 중 하나라고 봅니다.

키코가 고향 마을에서 학대받는 소년 이토시를 만나고, 안고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소년을 끌어안아 주는 장면은 아름답습니다. 52헤르츠를 듣는 사람이 있었기에, 이제는 자신이 누군가의 주파수를 듣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이 장면에서 고래 이미지가 겹쳐지는 연출은 인상적이었는데, 직후에 나오는 설명조 대사가 살짝 아쉬웠습니다. 일본 영화 특유의 "감동을 언어로 확인시켜 주는" 방식이 저는 개인적으로 좀 불편합니다.

마지막에 마을 잔치 중 무라나카가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 저는 이 컷을 꽤 오래 생각했습니다. 그 남자가 무슨 아픔을 안고 있는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냥, 사람은 누구나 52헤르츠의 목소리를 하나쯤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영화 <52헤르츠 고래들>은 제목이 훌륭하고 캐스팅도 나쁘지 않지만, 원작 소설의 감동을 온전히 옮기는 데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입니다. 제가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본 입장에서, 이 두 개는 꽤 다른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키코와 안고 사이의 연대가 주는 감동은 소설에서 훨씬 깊게 전달됩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영화에서도 분명히 살아있습니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52헤르츠로 울던 사람이, 누군가의 52헤르츠를 들어주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