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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주인공에 괜찮은 러브 스토리일 것 같아서 선택하게 된 영화. 열심히 봤지만 군데군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결혼을 앞둔 슌과 야요이, 대학병원 정신과 의사인 슌은 환자인 야요이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결혼을 앞두고 갑자기 야요이가 사라져 버린다. 슌은 무덤 하게 찾아 나선다. 그것이 대학 시절의 첫사랑, 하루에게서 온 편지와 연관이 있을 줄이야.

사라진 야요이
사랑이 끝나지 않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남기고 사라져 버린 야요이. 전화는 안 받고 야요이의 동생을 찾아가거나 일하는 동물원에 찾아가 보지만, 그곳에도 휴가를 냈다고 한다.
얼마 전 도착한 대학시절 첫사랑 하루의 편지. 대학의 사진 동아리에서 만난 하루와 슌은 서로에게 끌리고 우유니, 프라하, 아이슬란드에 사진 여행을 가고자 했지만 하루의 아버지의 집착으로 헤어지게 된다.
그 후 10년이 지난 지금 하루는 둘이 함께 가고자 했던 곳들을 여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추억이 가득 담긴 편지를 보낸 것이다.
병원에서 동료 의사에게 상담을 한다. 같이 밥은 먹고 있어? 같이 자고 있어? 처음에는 서로 닮은 부분에 끌렸지만, 지금은 섹스리스 상태인 듯했다. 동료 의사는 그런데도 왜 결혼을 하려고 했어?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사랑을 갈구하지만 영원할 수는 없다. 처음에는 서로가 없으면 죽을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무덤덤해진다. 이 둘도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말없이 사라지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비록 영화지만, 현실에서 나에게 이런 상황이 생긴다면 많이 실망스러울 것 같다.
내면의 상처
슌과 야요이, 둘 다 각자의 상처를 안고 있다. 야요이는 이전에 다른 사람과 결혼하려다 결혼 전에 도망한 전력이 있다. 행복한 감정이 들면 그 감정이 사라질까 봐 두려운 감정이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병원을 찾아왔고 그러다 슌을 만나게 된 것이다.
슌은 첫사랑을 그대로 보낸 것에 대한 미련인지 자신의 용기 없음의 자책인지, 그런 감정이 남아있었다. 영화에서 내가 보기에는 어쩔 수 없어 보였는데 슌은 자기가 붙잡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보다.
하루 아버지의 집착에 놀랐지만, 그래도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하고 공항에서 만나기로 한다. 그러나 하루의 손에는 짐이 없었다. 아버지를 떠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둘이 같이 전철로 돌아오며 중간의 어느 정류장에서 하루는 내려 버린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슌이 따라 내렸어야 한다는 것인가? 나는 이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슌과 야요이는 서로의 감정이 전해져서 끌렸을 것이다. 야요이도 의사다. 동물원에서 동물들을 치료하는 일을 하고 있다. 서로에게 끌리고 사귀고 결혼을 약속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이 느슨해지고, 별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야요이는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대학 시절 사진 동아리 선배 펜탁스에게 전화가 온다. 하루가 죽었고 너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고 어느 장소로 가라는 것이다. 슌은 하루가 마지막을 보낸 장소에서 그녀가 남겨 놓은 카메라의 그 필름을 현상하다 야요이의 사진을 발견한다.
하루가 남긴 필름에서 야요이의 사진이 있을 줄이야. 선배 차를 타고 야요이가 있는 장소로 간다. 바닷가에서 야요이를 만나고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듯 마구 달려간다. 둘은 넘어지고 서로 안고 슌은 집에 가자고 하고 야요이는 엉엉 운다.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영화에서 이것저것 서사를 만들어 넣었는데 연관성이 없어 보이거나 왜 그런 서사를 넣었는지 모르겠는 장면들이 있다. 첫째 하루의 아버지의 집착이다. 저 정도면 뭔가 사고 하나 치겠구나 싶었는데, 여행을 못 가게 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그리고 둘째, 젊은 나이의 하루를 시한부로 만들었다. 시한부가 아니어도 10년이 지났으면 혼자 여행하며 과거의 추억을 떠올릴 수도 있을 텐데, 굳이 본인이 시한부임을 알고 마지막으로 여행을 하고 자기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거기서 죽는다. 그리고 슌이 찾아오면 주라고 카메라를 남겨 놓는다. 죽으면서 현재의 연인이 야요이와 연결을 해준 것 같다.
슌의 10년 전 첫사랑을 굳이 찾아가서 간호사 일을 하며 하루에게 '사실은 너를 만나러 왔어' 밝히는 야요이. 여전히 야요이는 문제가 많아 보인다. 말없이 떠나버린 것도, 시한부인 것을 알면서 굳이 하루를 찾아간 것도. 찾아가서 잠깐 만나고 온 것도 아니고, 취업을 한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게 좋아하던 동물원의 동물들을 버리고 말이다.
영화는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결국 둘은 잘 살아가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해하기 어려웠고 불편했다.
우리 주위에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자기의 아픔이 전부인양 떠들어 대며 남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게 하고, 본인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잘 살고 있는, 황당한 경우 말이다.
이 영화가 그랬다. 왜 사라진 것일까? 이유가 무엇일까?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 관객들을 걱정시켜놓고 정작 본인은 납득하기 어려운 이상한 짓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론은 '둘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인 것이다.
영화의 해피엔딩이 이렇게 허무하고 화가 날 줄이야. 주인공들만 보고 선택한 이 영화는 내게는 별로였다. 우롱당한 기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