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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 "피스 오브 케이크"는 연애를 밥 먹듯 해왔지만 정작 한 번도 제대로된 연애를 한적이 없는 여자, 시노와 그래도 사랑이 뭔지를 아는 것 같은 남자, 교시로의 사랑 이야기 입니다. 교시로가 시노를 만나기 전에 사귀고 있던 여자가 있었기에 상황이 복잡해졌지만 결국은 시노와 교시로는 다시 만나게 되는 러브스토리입니다.

 

피스 오브 케이크 영화 (첫사랑, 불안, 식물)
피스 오브 케이크 영화 (첫사랑, 불안, 식물)


첫사랑처럼 찾아온 감정

주인공 우메미야 시노(타베 미카코 분)는 연애를 못 하는 여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누군가 고백해오면 만나고, 또 헤어지는 패턴을 반복해온 사람입니다. 폭력적인 마사키와의 관계도 그랬고, 그 이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 중의 하나가 시노가 조금 능동적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하는 연애를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죠.

그러다 이사 온 날, 옆집 남자 스가와라 교시로(아야노 고 분)를 보고 처음으로 사랑을 느낍니다. 교시로를 보고 '바람이 불었다'라고 표현했는데,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이런 것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처음으로 좋아하게 됐을 때의 그 감정은 설레는 것 이상으로 어딘가 무섭기도 하죠. 시노는 자기가 먼저 좋아했기 때문에 불안해 합니다. 

그리고 교시로에게는 여자친구 아카리가 있었습니다. 시노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마음을 걷잡을 수 없었고, 결국 고백을 해버립니다. 여기서 영화가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건, 시노의 감정이 도덕적으로 예쁘게 포장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연애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처음으로 능동적 애착을 경험하는 사람일수록 관계 불안이 강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시노가 교시로에게 집착에 가까운 확인을 반복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처음으로 내가 먼저 좋아해봤으니까요. 

둘이 키를 복사해서 보통의 커플처럼 지내는 장면들은 따뜻했습니다. 퇴근길에 나란히 걷고, 선선한 저녁 바람을 맞는 그 시간들. 이것들은 충분히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시노는 그 행복 한가운데서도 아카리가 돌아올까봐 무서워하고, 교시로의 마음을 떠보기도 합니다.

처음으로 능동적으로 사랑하게 된 시노, 여자친구가 있는 남자를 좋아하게 된 상황, 아카리의 귀환 이후 신뢰가 무너지며 결국 이별. 남녀의 연애라는 것은 이런 것 같습니다. 좋아하기 때문에 더 불안해 지기도 하죠. 이 행복이 곧 끝나버릴까봐 불안하고 상대방의 마음이 변할가봐 불안하고. 그래도 좋아하는 감정 자체는 아름다운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식물이 죽는 이유와 사랑이 시드는 이유

영화에서 복선은 키우고 있던 '식물'이었습니다. 시노가 키우는 식물들은 늘 시들어버립니다. 반면 교시로의 마당은 식물들이 잘 자랍니다. 이게 단순한 배경 설정이 아니었습니다.

식물이 죽는 이유는 보통 두 가지입니다. 물을 너무 많이 주거나, 아니면 관심 자체가 없거나. 시노의 연애도 비슷했습니다. 설렘 없이 상대방에게 끌려다니거나, 반대로 교시로에게는 너무 많은 감정을 쏟아서 스스로를 소진시켰습니다. 이 영화에서 이 대조가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돼 있는지를 생각하고 좀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영화 끝에서 교시로는 시노가 두고 간 식물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이 한 장면이 어떤 긴 대사보다 더 많은 걸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저도 이 장면이 좋았습니다.

영화 중반 "사랑은 꾸미면서 하는 게 아니다"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이 말은 생각보다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서로가 자존심을 세우니까요. 그러나 구질구질하게 보일까봐 감정을 정제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감정 자체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됩니다. 시노와 교시로가 재회 장면에서 "내가 더 좋아했다"고 싸우는 장면이 그래서 웃기면서도 아팠습니다. 

"피스 오브 케이크"는 예쁜 사랑 이야기가 아닙니다. 연애를 많이 해봤지만 사랑을 가꾸는 법은 몰랐던 한 여자가 처음으로 제대로 좋아하게 됐을 때 얼마나 흔들리고 부서지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기억에 남은 것은 "사랑은 꾸미는 것이  아니다"라는 그 대사였습니다.

구질구질하더라도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 텐의 말처럼 '해야 할 이야기'를 미루지 않는 것, 이것이 말은 쉬운데 실제로 해보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저도 알지만, 이 영화는 그 무서움을 아주 날것으로 보여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