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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 시리즈 9번째 작품 <침묵의 퍼레이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500페이지 넘는 원작을 2시간짜리 영화로 압축한 작품입니다. 원작을 먼저 읽고 극장에 들어간 저로서는, 첫 장면부터 '이걸 어떻게 2시간 안에 담겠다는 거지?'라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 걱정은 반쯤 맞고 반쯤 틀렸습니다.

 

침묵의 퍼레이드 (원작비교, 갈릴레오, 피해자와경찰)
침묵의 퍼레이드 (원작비교, 갈릴레오, 피해자와경찰)

 

원작과 영화, 갈릴레오

일반적으로 원작 소설을 영화화하면 "영화가 원작보다 못하다"는 평이 따라붙는데, 제 경험상 <침묵의 퍼레이드>는 단순히 '못하다'는 말로 정리하기 어렵습니다. 방향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원작이 공들이는 것은 알리바이 트릭(alibi trick)입니다. 여기서 알리바이 트릭이란, 용의자 전원에게 완벽한 알리바이가 성립하도록 설계된 범죄 구조를 말합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떠올리게 하는 이 구조를 히가시노 게이고는 현대 일본 소도시의 정서 속에 녹여냈고, 500페이지라는 분량이 바로 그 정교한 설계에 쓰입니다. 각 인물의 관계와 거짓말이 한 겹 한 겹 쌓인 다음 마지막에 한꺼번에 무너지는 구조라, 독서 내내 제가 직접 추리하는 재미가 상당했습니다.

영화는 이 트릭의 디테일을 과감히 걷어냅니다. 주변 인물 상당수가 정리되고, 유가와 마나부·쿠사나기 슌페이·우츠미 카오루 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재편됩니다. 처음에는 그 선택이 아쉬웠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감독이 무엇을 남기고 싶었는지가 조금씩 보였습니다.

영화가 선택한 것은 증거 불충분(insufficient evidence)이라는 법적 개념이 피해자 가족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정면으로 드러내는 일이었습니다. 증거 불충분이란 범죄 사실은 의심되나 유죄를 입증할 증거가 충분하지 않아 기소나 처벌을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스누마 칸이치는 두 차례 — 모토하시 유우나 사건과 나미키 사오리 사건 — 모두 이 원칙 아래 법망을 빠져나갑니다. 법이 작동한 결과지만, 피해자 가족의 입장에서는 법이 작동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오래 멈췄던 장면은, 나미키야 식당에 하스누마가 버젓이 들어서는 순간이었습니다. 소설에서는 그 긴장감이 여러 페이지에 걸쳐 서서히 쌓이는데, 영화는 단 몇 초 안에 처리합니다. 촘촘하게 쌓인 감정이 압축되면서 강도는 오히려 높아졌지만, 그 감정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모르는 관객에게는 충격이 반쪽짜리로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피해자와 경찰, 어디서 갈리는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유가와 마나부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여전히 냉정하고 단정한 중년 교수를 완벽하게 소화하지만, 영화 속 그는 사건 해결자라기보다는 타인의 사연에 조용히 얽혀 들어가는 관찰자에 가깝습니다. 반면 기타무라 카즈키가 연기한 쿠사나기 슌페이는 이 작품의 진짜 감정적 무게를 짊어진 인물입니다.

쿠사나기는 경부(警部)이자 팀을 이끄는 계장(係長)입니다. 경부란 일본 경찰 계급 체계에서 경시(警視) 아래에 위치하며, 현장 수사팀을 총괄하는 중간 간부를 의미합니다. 제도대학 사회학부 출신답게 인간관계의 흐름을 읽는 데 능하지만, 바로 그 능력이 이 사건에서 그를 가장 괴롭힙니다. 피해자 가족의 고통이 얼마나 깊은지 너무 잘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미 과거에 하스누마를 잡았다가 놓쳤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이에 또 다른 피해자가 생겼다는 죄책감은 소설보다 영화에서 훨씬 직접적으로 드러납니다. 경찰이라는 직업이 요구하는 것은 감정 절제와 법적 절차의 준수입니다. 그런데 피해자 가족이 복수에 나선 순간, 경찰은 그들 역시 범죄자로 다뤄야 합니다. 쿠사나기가 흔들리는 건 이 지점입니다. 법이 옳다는 걸 알면서도, 법이 해주지 못한 것을 인간으로서 외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갈릴레오 시리즈는 유가와 마나부의 논리적 추론, 즉 과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불가사의해 보이는 사건을 해체하는 과정이 핵심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 경험상 원작 소설에서는 그게 분명히 맞습니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그 논리보다 감정의 무게가 훨씬 크게 느껴졌습니다. 영화 안에서 가장 오래 남은 대사는 유가와의 추리가 아니라 이것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다치게 된다면, 경찰이 그 사람을 지켜줄 수 있을까요?(誰かが傷つくとしたら警察はその人を守ってくれるんですか?)"

이 한 줄이 영화 전체의 질문을 압축합니다. 피해자 보호와 법적 처벌 사이의 간극(間隙) — 즉 법이 도달하지 못하는 피해자의 고통과 법이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범죄자의 처벌 사이에 존재하는 공백 — 을 이 영화는 정면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어떤 명쾌한 답도 내놓지 않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침묵의 퍼레이드>의 원작 소설은 2018년 일본에서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품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 중 가장 복잡한 인물 구조를 가진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영화화된 2022년 작품은 일본 박스오피스에서 개봉 첫 주 1위를 기록했으며, 갈릴레오 시리즈 영화 중 흥행 면에서도 안정적인 성과를 거뒀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고 든 솔직한 생각은, 이 작품은 원작 독자와 비독자가 완전히 다른 영화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원작을 읽은 쪽은 무엇이 생략되었는지, 어떤 인물의 감정이 왜 저렇게 표현되는지 배경을 이미 알기 때문에 영화의 압축을 이해하며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원작 없이 영화만 접하는 관객에게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와 복수 계획의 윤곽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아 몰입의 깊이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침묵의 퍼레이드> 영화는 원작 소설의 완전한 재현이 아닙니다. 트릭의 정밀함을 기대하고 들어가면 아쉬움이 남을 수 있고, 인물들의 사연을 충분히 알지 못한 채 보면 감정이 반쪽만 전달됩니다. 제 경우엔 원작을 읽은 뒤 영화를 봤고, 그 덕분에 영화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렸는지를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같은 사건을 두 가지 방식으로 바라보는 경험 자체가 이 작품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재미입니다. 법이 해결하지 못한 고통을 사람들이 어떻게 끌어안고 사는지, 그리고 경찰이라는 존재가 그 고통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히가시노 게이고는 소설과 영화 두 형식으로 각각 다르게 보여줍니다. 오랜만에 갈릴레오의 세계를 다시 만날 수 있어 반가웠고, 그것만으로도 시간이 아깝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