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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당신의 죽음을 미리 결정해뒀다면, 나머지 24시간을 어떻게 쓸 것 같습니까. 2008년 일본 영화 《이키가미》는 바로 그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처음 이 설정을 접했을 때 저는 너무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 황당함이 어느 순간부터 '지금 우리 사회랑 뭐가 다르지?'라는 불편한 질문으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키가미 리뷰 (국가번영유지법, 후지모토, 전체주의)
이키가미 리뷰 (국가번영유지법, 후지모토, 전체주의)


국가번영유지법, 말이 되는 소리인가

영화의 핵심 설정은 '국가번영유지법'입니다. 여기서 국가번영유지법이란 정부가 사회 생산성과 생명 인식 제고를 명분으로, 18~24세 청년 1,000명 중 1명을 강제로 사망하게 만드는 법을 의미합니다. 방법은 교묘합니다. 초등학교 입학 시 예방접종 주사에 나노캡슐을 몰래 심어두고, 선발된 대상자는 정해진 시각에 폐동맥 파열로 사망하게 됩니다. 사망 24시간 전에는 국가가 발행한 사망예고증, 즉 '이키가미(逝紙)'가 전달되는 것이죠.

이 설정을 두고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냐"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그 비현실성이 이 영화의 강점이라고 봅니다. 터무니없이 극단적인 설정이기 때문에, 국가가 개인의 생명을 수단으로 쓴다는 논리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실제로 영화 속 정부의 논리는 단순합니다. 죽음이 언제 올지 알아야 사람들이 삶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공리주의적(utilitarian) 논리인데, 공리주의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윤리 체계를 말합니다. 그런데 영화가 실제로 보여주는 결과는 정반대입니다.

세 명의 이키가미 수령자는 각각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마지막 24시간을 보냅니다. 음악을 빼앗겼던 청년 타나베 츠바사는 방송에 나가 자신이 진짜 하고 싶었던 노래를 부르다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습니다. 국회의원 어머니의 기대에 짓눌려 살던 타키자와 나오키는, 아들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어머니에게 총을 겨누는 극단적 행동으로 치닫습니다. 맹인 여동생을 홀로 돌봐온 이이즈카 사토시는 자신의 각막을 동생에게 이식하기로 결심합니다. 영화에서는 오빠의 죽음이 동생의 삶으로 직접 이어지는 상징적 장치로 쓰입니다. 이 세 에피소드 어디에도 국가가 기대했을 '사회 생산성 향상'은 없습니다. 가족은 무너지고, 정치는 오염되고,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은 이어질 뿐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제가 가장 무서웠던 부분은 사실 사람이 죽는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사회 전체가 길들여져 있다는 사실, 그게 진짜 섬뜩했습니다. 그 공포는 스크린 밖으로도 충분히 전해집니다.


후지모토는 왜 이키가미를 전달했는가

제가 영화를 보는 내내 시선이 고정됐던 건 단연 주인공 후지모토 켄고(마츠다 쇼타)였습니다. 이키가미를 전달하는 후생보건성 공무원인 그는, 영화 초반에는 이 제도를 어떤 의심도 없이 수행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무감정한 얼굴 뒤에서 이미 뭔가 균열이 시작되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너무 애써 감정을 지우고 있다는 인상이랄까요.

결정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두 번째 이키가미를 전달하러 간 후지모토는, 대상자가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상황을 목격하고 본능적으로 막아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직후 사망예고증을 내밀죠. 살리러 온 건지 죽이러 온 건지 묻는 대상자의 질문 앞에서, 후지모토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혼란이 스칩니다. 마츠다 쇼타가 인터뷰에서 직접 말했듯이, 그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연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미세한 균열이 더 오래 남습니다.

이 장면이 드러내는 것은 단순한 개인의 갈등이 아닙니다. 전체주의(totalitarianism) 체제 아래에서의 구조적 역할 충돌입니다. 전체주의란 국가가 개인의 삶 전반을 통제하고, 그 체제에 저항하는 자를 적으로 간주하는 정치 체제를 뜻합니다. 후지모토의 동료 중 국가번영유지법에 의문을 품었던 인물은 이상범으로 낙인찍혀 제거됩니다. 후지모토 역시 그 구조를 알면서도 침묵합니다. 

저는 그를 비겁하다고 단정짓기가 어려웠습니다. 365일 감시당하고, 반대 목소리를 내는 순간 적이 되는 사회에서 목숨을 걸고 저항하는 게 과연 당연한 일일까요. "용감하게 싸워야 한다"는 시각도 있는데, 제 경우엔 그 반대 시각도 똑같이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스템에 적응하면서 조용히 살아갑니다. 후지모토도 그런 보통 사람 중 하나입니다.

 

결말에서 그는 여전히 이키가미를 전달합니다. 영웅적으로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직접 목격한 세 사람의 마지막을 기록으로 남기며, 관객에게 질문을 넘깁니다. 영화 속 빅브라더(Big Brother)적 감시 사회가 계속 작동하는 가운데, 의심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시스템 밖으로 나오지 못한 인간의 초상. 저는 그 결말이 씁쓸하면서도 가장 정직한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히어로 서사가 아니라, 우리 대부분의 모습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키가미》는 '죽기 전 24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감동 코드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질문은 훨씬 불편합니다. 국가가 죽음을 결정할 권리가 있는가. 그리고 그런 국가에 침묵하며 적응해가는 우리 자신은 어떤 존재인가.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것은 후지모토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이키가미를 계속 전달합니다. 의심했지만, 거부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저는 그게 제 모습과 너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불편했습니다. 부당하다는 걸 알면서도 조용히 살아가는 것, 우리 대부분이 매일 하고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