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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이혼을 아이가 '나중에' 알게 된다면, 그게 더 잔인한 걸까요, 아니면 더 배려 깊은 걸까요. 소마이 신지 감독의 <이사>를 보고 나서 제가 한참 붙잡혀 있던 질문입니다. 1993년작이지만 2025년 7월 국내 개봉한 이 영화, 처음엔 별 기대 없이 시작했다가, 끝까지 몰입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시선으로 설계된 구도 연출
영화 첫 장면, 삼각형 모양의 식탁에 엄마·아빠·렌코 세 사람이 앉아 밥을 먹습니다. 구도(composition)란 화면 안에서 인물과 사물을 어떻게 배치하느냐를 뜻하는데, 여기서 소마이 신지 감독은 삼각형이라는 가장 불안정한 도형을 가족의 형태로 선택했습니다. 제가 봤을 때 이 장면에서 이미 '이 집은 뭔가 어긋나 있구나'를 느꼈는데, 나중에 이혼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첫 장면이 얼마나 치밀하게 설계된 복선이었는지 감탄했습니다.
이 영화는 이혼이라는 핵심 정보를 초반 30분 가까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렌코가 이혼신청서를 직접 목격한 순간, 관객도 함께 깨닫는 구조입니다. 이걸 영화 이론에서는 제한적 시점(restricted narration)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 카메라가 특정 인물이 아는 것 이상을 보여주지 않는 방식으로, 관객이 렌코와 동일한 정보량을 갖게 만드는 기법입니다. 제가 국어 시간에 배운 '3인칭 관찰자 시점'과 같은 원리였습니다.
소마이 신지 감독은 롱테이크(long-take), 즉 컷 없이 길게 이어지는 촬영을 즐겨 사용하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롱테이크란 카메라를 끊지 않고 한 장면을 길게 담아내는 기법으로, 연기자의 호흡과 감정이 편집 없이 그대로 전달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덕분에 렌코가 산을 혼자 오르는 장면이나 축제를 바라보는 장면이 훨씬 더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제 생각에 이런 롱테이크 장면은 보는 내내 숨을 참게 만드는데, 이 영화가 딱 그랬습니다.
입체적 가족 이혼, 누가 나쁜 사람인가
영화를 보면서 전반부까지 저는 엄마를 좀 차갑다고 느꼈습니다. 렌코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혼자 규칙을 정하는 엄마, '둘을 위한 계약서'를 꺼내드는 엄마. 아빠는 그에 비해 렌코 편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후반부, 렌코가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아 아빠가 집을 찾아온 장면에서 판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엄마가 아빠에게 하는 말을 듣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입덧으로 가장 힘든 시기에 딱 한 번 도움을 요청했더니 "경제 활동도 안 하는 게 잔소리냐"고 했다는 것. 이걸 들은 순간 제가 내렸던 판단이 전부 렌코의 시점에 갇힌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이 영화의 가장 영리한 지점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관점 취하기(perspective-taking)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관점 취하기란 특정 인물의 시선에 갇혀 타인의 내면을 보지 못하는 인지적 제약을 의미합니다. 소마이 신지 감독은 이 제약을 의도적으로 활용하여, 관객이 렌코와 똑같이 아빠를 '좋은 쪽'으로, 엄마를 '나쁜 쪽'으로 보다가 한 장면에서 일거에 뒤집히는 경험을 설계했습니다. 이런 반전이 설정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인물의 서사에서 나올 때 훨씬 더 기억에 남습니다.
렌코가 비와호에서 혼자 여행하는 후반부도 이 맥락에서 보이더군요. 이웃집 할아버지가 건넨 "잊을 수 있다는 건 좋은 거야"라는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렌코가 세 사람으로 이루어진 과거의 가족상을 내려놓기 위한 서사적 통과의례(rite of passage)의 시작점처럼 느껴졌습니다. 통과의례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넘어가는 상징적 전환 과정을 뜻하는데, 렌코가 산을 오르고 축제를 보고 바다에 서는 여정이 정확히 그 구조를 따릅니다. 마지막에 혼자가 된 자신을 스스로 안아주는 장면, 그리고 "오메데토 고자이마스(축하합니다)"를 연신 외치는 장면은 이혼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새 출발을 스스로 선언하는 것으로 읽혔습니다.
간사이(関西) 사투리도 처음엔 당황스러웠는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억센 억양이 오히려 인물들의 날것의 감정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사이 사투리는 오사카·교토를 중심으로 한 일본 서부 방언으로, 표준어보다 억양이 강하고 어미 변화가 독특합니다. 처음에는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그 낯선 억양이 오히려 이 가족이 '우리 집 이야기'가 아님을 환기시켜 주는 거리감으로도 작용했습니다.
일본 영화진흥기구(유니재팬, UniJapan)는 소마이 신지를 1980~90년대 일본 독립영화 흐름을 대표하는 작가주의 감독 중 한 명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사>는 키네마준보(キネマ旬報) 1993년 일본 영화 베스트10에 선정된 바 있으며, 일본 비평계에서 아동의 시선을 통한 가족 해체를 가장 섬세하게 다룬 작품 중 하나로 꼽힙니다. 직접 보니 이 평가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정리하면, <이사>는 이혼을 소재로 한 영화가 아니라 이혼을 '모르는' 아이를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그 차이가 이 작품을 30년이 지나도 다시 꺼내볼 이유로 만들어줍니다. 제가 봤을 때 가장 오래 남은 건 렌코가 혼자 바다에 서서 과거의 자신을 안아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어른이 되는 게 꼭 강해지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임을 한 아이가 하루 사이에 깨닫게 됩니다.
저는 이 영화 한 편으로 소마이 신지라는 이름을 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