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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줄은 알았지만, 이런 내용일 줄은 몰랐습니다. 게다가 결말을 보고 나서 그 반전에 놀라고 말았습니다. 내가 가장 경멸하던 사람이 사실은 나를 가장 깊이 사랑한 사람이었다면, 우리는 그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이 연출하고 2018년 개봉한 《이름없는 새》는 그 불편한 질문을 끝까지 놓지 않았습니다.

줄거리와 반전 결말
처음 영화를 봈을 때 저는 토와코라는 인물을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녀는 일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먹여 살리는 진지를 '더럽다', '미꾸라지 같다'며 노골적으로 혐오합니다. 연상의 남자가 공사 현장에서 번 돈으로 생활비를 대고 밥까지 차려주는데, 고마움은커녕 모욕적인 말을 쏟아냅니다. 그리고 진지가 그 말들을 듣고도 화 한 번 내지 않는 장면이 오히려 더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토와코의 유일한 낙은 백화점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걸어 불평을 늘어놓는 것입니다. 그러다 시계 매장의 미즈시마를 만나고, 그가 자신이 8년 전 헤어진 옛 연인 쿠로사키와 닮았는지, 어쨌든 유부남인 그에게 빠져듭니다. 그 시점에서 형사가 찾아와 쿠로사키가 이미 5년 전부터 행방불명 상태라는 사실을 전합니다.
여기서 영화는 교묘하게 관객을 진지 쪽으로 유도합니다. 그의 집요한 전화, 토와코를 미행하는 행동, 과거를 숨기는 듯한 태도 이런 요소들이 쌓이면서 진지를 범인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저도 중반부까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신뢰할 수 없는 서술자' 기법, 신뢰할 수 없는 서술자란, 관객이 특정 인물의 시선을 따라가도록 설계해 실제 진실을 의도적으로 가리는 구조를 의미합니다. 영화는 이 기법을 토와코의 왜곡된 기억 위에 정확히 얹어놓습니다.
결말에서 드러나는 진실은 충격적입니다. 토와코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쿠로사키는 실제로는 그녀를 착취하고 폭력을 가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쿠로사키를 찔러 죽인 사람은 다름 아닌 토와코 자신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기억조차 억압해 완전히 지워버렸고, 진지는 그 시신을 묻고 토와코의 죄를 홀로 덮어쓴 채 5년을 살아왔습니다. 결말에서 진지는 "모든 죄는 내가 안고 가겠다, 아이가 생기면 나(진지)라고 생각하고 키워달라"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 반전은 단순한 '누가 범인인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토와코가 기억 속에서 미화해온 쿠로사키는 허상이었고, 자신이 혐오하며 살았던 진지야말로 유일하게 그녀의 삶을 실제로 지킨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핵심입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영화가 스릴러를 완전히 넘어선다고 느꼈습니다.
기억을 억압한 채 과거의 허상을 사랑하는 여성 토와코, 혐오를 받으면서도 토와코의 죄를 덮어쓰고 삶을 지킨 남성 진지, 토와코가 미화한 기억 속 연인이지만 실제로는 폭력적인 인물 쿠로사키, 쿠로사키와 유사한 유형의 남성 미즈시마, 이 일반적이지 않은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감정이야기. 재미있었다고 해도 될지 모르겠으나 끝까지 흥미롭게 봤습니다.
아오이 유우의 연기
제가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아오이 유우에 대해 가진 이미지는 청순하고 단정한 배우였습니다. 《워터보이즈》나 초기 출연작들에서 굳어진 인상이었는데, 《이름없는 새》에서 그 이미지는 완전히 사라집니다. 토와코는 아름다운 주인공이 아닙니다. 무기력하고 신경질적이며, 자신의 분노를 타인에게 쏟아내는 사람입니다.
아오이 유우가 이 배역에서 보여주는 것은 '호감 없는 인물'을 끝까지 설득력 있게 유지하는 능력입니다. 토와코는 진지 앞에서는 혐오감을 숨기지 않고, 미즈시마 앞에서는 사랑받고 싶은 여성의 얼굴을 합니다. 쿠로사키를 회상하는 장면에서는 상처와 욕망이 동시에 얼굴에 나타납니다. 이 세 가지 표정이 모두 다르면서도 같은 사람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런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가 영화 내내 설득력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영화 이론에서 이런 연기 방향을 '탈영웅화 서술(de-heroization narrative)'이라고 부릅니다. 탈영웅화 서술이란 주인공을 관객이 응원하고 싶은 이상적인 존재로 그리지 않고, 결점과 모순을 그대로 드러내어 현실적인 공감을 유도하는 기법을 말합니다. 아오이 유우는 이 방향을 완전히 받아들인 것으로 보였고, 그 결과 후반부의 감정이 훨씬 크게 다가왔습니다.
아베 사다오의 진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저분한 외모, 거친 말투, 상대를 뒤따르는 행동 이 모든 것이 처음에는 관객을 밀어냅니다. 그런데 결말의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같은 장면들이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저는 영화를 본 후, 초반부를 다시 돌려보았는데 진지의 표정과 대사에 숨겨진 의미가 새롭게 보였습니다. 저는 이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아오이 유우는 이 작품으로 제42회 호치 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제41회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여우주연상도 받았습니다. 국내에서 청순 이미지로 굳어진 배우가 이 정도의 파격을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작품에 대한 아오이 유우의 신뢰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원작 소설은 일본 미스터리 작가 누마타 마호카루가 썼으며, 그녀의 작품은 마지막 반전 하나를 위해 전체 구조를 치밀하게 설계하는 방식으로 유명합니다.
《이름없는 새》를 다 보고 나서 제게 오래 남은 것은 진지의 마지막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토와코가 5년 동안 매일 혐오하며 살았던 그 사람이, 사실은 자신의 인생 전체를 책임지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반전이 너무 선명해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이 작품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진지의 선택에는 분명한 문제가 있고, 그 헌신이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행위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은 미화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인상적인 이유는 사랑을 자극적 감정에만 의존할 때 우리가 무엇을 놓치는지를 정확하게 짚어내기 때문입니다.
쿠로사키나 미즈시마처럼 자극적이고 긴장감 있는 관계가 사랑처럼 느껴지고, 정작 실제로 자신을 지켜주는 존재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감정은 영화 밖에서도 낯설지 않습니다.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던 토와코가, 결말에서는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누군가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