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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가 2026년 7월, 68세로 별세했습니다. 부고를 접한 순간,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책이 아니라 한 장면이었습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신, 그리고 그 뒤에 조용히 서 있던 한 남자.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은 제가 두 번 봤는데도 볼 때마다 결말에서 말을 잃게 되는 작품입니다. 추리 영화인 줄 알았다가, 끝날 때쯤엔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이시가미, 헌신)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이시가미,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

추리소설 팬들 사이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를 저평가하는 시각이 있다는 걸 찾아보고 알았습니다. '대중 취향에 맞춘 작가'라는 식의 평가인데, 솔직히 저는 그게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수상 이력만 따져봐도 그렇습니다. 1999년 소설 <비밀>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고, 2006년에는 <용의자 X의 헌신>으로 나오키상과 본격미스터리 대상을 동시에 석권했습니다. 여기서 나오키상이란 일본 대중문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를 아우르는 작품에 수여됩니다. 나오키상 후보에만 여섯 번 노미네이트 됐고, 신풍상·중앙공론문예상·시바타 렌자부로상·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까지 대중문학 작가로서 받을 수 있는 상은 거의 다 받았습니다.

'대중에게 어필한다'는 말로 평가절하 하기엔, 문학성과 재미라는 두 가지를 동시에 잡아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 수상 이력이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용의자 X의 헌신> 원작 소설은 2005년 출간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읽히고 있으며, 일본·한국·중국에서 각각 영화와 드라마로 리메이크될 만큼 이야기의 골격 자체가 단단합니다.


이시가미의 트릭이 가능했던 이유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저에게 걸렸던 부분이 바로 시신 바꿔치기 장면이었습니다. 왜 시신에서 DNA를 채취하거나, 피해자가 묵었던 여관방의 지문을 바로 대조하지 않는 걸까. 한국 기준으로 생각하면 금방 뚫릴 것 같은 트릭인데, 이게 왜 성립하는 거지 싶었습니다.

찾아보니 거기에 꽤 구체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한국은 전 국민 대상 주민등록증 제도가 있어 지문과 신원 정보가 국가 통합 데이터베이스로 관리됩니다. 반면 일본은 원작 소설이 출판된 2005년, 영화가 개봉한 2008년 당시 이런 전 국민 지문 등록 제도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마이넘버 제도란 일본이 2015년에야 도입한 개인 식별 번호 시스템으로, 주민 전체에게 12자리 고유 번호를 부여하는 방식입니다. 2016년부터 실물 카드 발급이 시작됐으니, 영화 시점 기준으로는 신원 확인 절차에 구조적인 허점이 실제로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이 허점이 단순히 영화적 설정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2010년 도쿄에서 '유령 고령자' 파동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서류상 111세로 도쿄 최고령 남성이었던 인물의 생존을 확인하러 공무원이 방문했다가, 이미 30년 전에 사망한 채 미라 상태로 발견된 겁니다. 일본 정부가 전국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서류상으로만 살아있던 고령자가 23만 명이 넘었고, 120세·150세가 넘도록 사망 처리가 안 된 기록도 수두룩했습니다.

이시가미의 트릭은 허황된 창작이 아니라, 당시 일본의 실제 행정 시스템 위에 정교하게 설계된 논리였던 겁니다. 제가 이 부분을 살펴보았을 때 좀 놀랐습니다. 소설가가 제도의 허점을 정확히 짚어낸 건지, 아니면 그 허점이 워낙 공공연했던 건지.

 


헌신, 장르는 추리가 아니라 로맨스다

제가 이 영화를 두 번 보고 나서 내린 결론은 하나입니다. 이건 범죄 스릴러 영화가 아닙니다. 진하고 짙은, 지독한 로맨스 영화입니다.

보통 서사 구조를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로 나눈다면, 이 영화는 처음부터 이미 위기가 시작된 것처럼 보입니다. 살인이 초반에 벌어지고, 알리바이가 구축되고, 수사가 좁혀지는 과정을 보면서 저는 '이걸 두 시간 동안 어떻게 끌고 가려는 거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속았습니다. 이시가미의 트릭이 해체되는 순간이 진짜 절정이었고, 그 절정은 트릭의 붕괴가 아니라 한 인간의 내면이 폭발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여기서 로우 앵글 쇼트란 카메라가 피사체보다 낮은 위치에서 올려다보며 촬영하는 기법으로, 인물이 세계로부터 고립되거나 짓눌린 느낌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데 씁니다. 감독 니시타니 히로시는 이 기법으로 에도가와 강변을 걷는 이시가미의 발걸음을 포착하는데, 그 장면에서 이시가미가 세상에 속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걸 대사 한마디 없이 전달합니다. 츠츠미 신이치의 연기가 그 위에 얹히는 방식이, 이 영화의 가장 무서운 부분이었습니다. 굽은 어깨, 초점 없는 눈빛, 야스코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얼굴에 스치는 미세한 떨림. 저는 그 장면에서 그가 왜 그 모든 것을 했는지를 설명 없이 이해했습니다.

한국과 중국에서 리메이크된 버전도 있지만, 저는 원작의 질감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봅니다. 이시가미의 초연함 뒤에 깔린 우울감은 배우 한 명이 화면 전체를 감당해야 하는 종류의 것인데, 그 무게를 츠츠미 신이치만큼 버텨낸 배우를 다른 버전에서는 아직 못 봤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이야기를 어떤 영감으로 썼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예리함을 한 치도 흐트러뜨리지 않는 구성을 어떻게 설계했는지, 볼 때마다 경이로웠습니다. 그 사람이 이제 없다는 사실이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 이유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새 작품을 더 이상은 볼 수 없는 것은 안타깝지만, 작가를 기억하는 좋은 방법은 그가 남긴 이야기를 다시 꺼내보는 것이겠지요.

<용의자 X의 헌신>은 처음엔 트릭에 감탄하다가 끝에서 말을 잃게 되는 영화입니다. 제가 이 작품을 반복해서 본 이유는 트릭 때문이 아닙니다. 이시가미가 야스코 모녀를 끝내 지키지 못하는 그 순간의 절규가, 볼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가슴에 박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