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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다 보고 나서 "이게 실화라고?" 하며 검색을 두 번이나 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실존 소설가의 삶이 이 영화에 그대로 녹아 있었고,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다시 떠올린 장면들은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영상미, 꽃의 색채, 그리고 미치코라는 인물이 남긴 여운이 아직도 머릿속에 맴돕니다.

영화 인간실격 (실화, 다자이오사무, 영상미)
영화 인간실격 (실화, 다자이오사무, 영상미)


다자이 오사무의 실제 삶

처음엔 그냥 '일본 문예 영화'려니 하고 가볍게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에서 태어나 1948년 6월 13일, 연인 야마자키 토미에와 타마가와죠스이에 투신해 생을 마감한 실존 소설가입니다.

영화 속 장면들이 하나씩 실제 사건과 겹쳤습니다. 약물 중독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전력, 애인과의 동반자살 시도, 셋째를 임신 중인 아내를 두고 오타 시즈코와 관계를 맺은 것, 그리고 그 관계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소설 『사양(斜陽)』이 대히트를 친 것까지. 픽션이 아니었습니다.

자전적 소설(自傳的 小說)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자전적 소설이란 작가 본인의 실제 경험과 심리를 바탕으로 쓴 소설을 의미합니다. 다자이의 작품들은 그 정의에 가장 충실한 사례로 꼽히는데, 영화는 바로 그 창작 과정 자체를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소설은 허구"라고 알려져 있지만, 다자이의 경우만큼은 삶 자체가 원고지였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천재인가 파괴자인가

영화를 보면서 제가 불편했던 장면은 오사무가 시즈코에게 "일기를 보여주면 만 엔을 주겠다"고 말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상대의 내면을 원고 재료로 쓰는 것이, 아주 많이 마음에 들지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순간, 오사무가 완성한 문장들을 보면서 저는 다시 복잡해졌습니다.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났다"는 문장은 원래 시즈코의 일기에 있던 글입니다. 다자이는 그것을 훔쳤다고도 할 수 있고, 세상에 꺼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예술적 천재성과 윤리적 인격은 함께 가야된다고 믿는 분들이 있은데, 다자이를 보면 그 둘이 완전히 따로 놀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무뢰파(無頼派) 문학이라는 흐름이 있습니다. 여기서 무뢰파란 2차 대전 직후 일본에서 기존 사회 질서와 도덕을 거부하고, 자기 파괴적인 삶 자체를 문학의 소재로 삼은 작가군을 의미합니다. 다자이는 그 대표 주자였고, 영화는 그 무뢰파적 삶의 결을 아주 솔직하게 보여줍니다. 제 생각에 이런 인물을 단순히 "나쁜 놈"이나 "천재"로만 규정하면 뭔가 놓치게 됩니다. 그 불편함 자체가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느꼈습니다.

미시마 유키오가 극 중에서 "당신이 어떻게 죽을지 궁금해할 뿐입니다"라고 쏘아붙이는 장면은 실제 두 작가 사이의 문학적 긴장감을 반영한 것으로,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소장 자료에서도 두 사람의 공개적인 문학 논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장면이 그냥 영화적 연출이 아니라 실제 긴장의 재현이라는 걸 알고 나니 더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니니가와 미카 감독의 영상미

제가 이 영화에서 제일 먼저 빠져든 건 이야기보다 화면이었습니다. 첫 장면부터 색이 너무 강렬해서 잠깐 멈췄을 정도였습니다. 니니가와 미카 감독은 『사쿠란』과 『헬터스켈터』를 연출했던 감독인데, 그 두 작품처럼 이 영화에서도 색채 상징주의(色彩 象徵主義)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색채 상징주의란 특정 색을 통해 감정이나 주제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연출 방식을 말합니다.

오타 시즈코와의 연애가 시작될 때 붉은 매화가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불타오르는 감정의 시각적 번역이었습니다. 반면 야마자키 토미에를 처음 만나는 장소에는 하얀 등나무꽃이 흐드러집니다. 처음엔 그냥 예쁘다고만 생각했는데, 나중에 두 사람의 결말을 보고 나서 다시 그 장면을 떠올리니 감독이 처음부터 다 알려주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토미에가 오사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 파란 수국이 등장하는 것도 단순한 소품이 아닙니다. 수국의 파랑은 쓸쓸함과 슬픔, 그리고 마지막 장면의 강물 색과도 이어집니다. 제 생각에 이렇게 꽃과 색으로 서사를 이중 구조로 쌓아올리는 영화는 흔하지 않습니다. 야한 장면이 나오기도 했지만 전혀 자극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화면 자체가 이미 시(詩)였으니까요.


기억에 남는 인물은 미치코였다

오구리 슌의 연기는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다자이 특유의 나약함과 자기중심성을 몸 전체로 표현하는 방식이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영화를 보는 내내 가장 마음에 걸린 인물은 오사무가 아니라 아내 미치코였습니다.

미치코는 술, 약물, 자살 시도, 불륜을 반복하는 남편에게 잔소리 한 번 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런 캐릭터를 "순종적인 아내"로 비춰지는데, 이 영화의 미치코는 달랐습니다. 동생의 부고를 받고 집을 비우기 전, 미치코가 오사무에게 "파괴해요, 우리를. 파괴하고 진짜 걸작을 써요"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저는 멈칫했습니다.

그 대사는 체념이기도 하고, 오사무를 가장 깊이 이해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미치코가 깨끗해진 집을 보고, 아이가 "언니랑 청소했어요"라고 말하는 장면. 아들의 물감을 얼굴에 문지르며 무너지는 그 장면은 대사 하나 없이도 모든 걸 말하고 있었습니다. 제 경우엔 그 장면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인간실격』은 1948년 다자이가 실제로 완성하고 자살 직전까지 교정을 본 소설입니다. 신초샤(新潮社)에서 출판된 이 작품은 현재까지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 중 하나로, 누계 발행 부수가 수백만 부에 달합니다. 그 소설이 완성될 수 있었던 배경에 미치코라는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 그 무게를 영화는 끝까지 놓지 않았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한 인간이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꽃처럼 아름답게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파괴가 누군가에게는 상처였다는 것도 조용히 옆에서 알려주는 방식이었습니다. 미치코의 시선이 계속 그 역할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예술가의 방탕한 삶을 다룬 영화는 그것을 낭만화하거나 단죄하는 쪽으로 기울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 어느 쪽도 택하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이번에도 저는 멋진 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