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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다 마사키와 고마츠 나나, 두 배우가 스크린에서 나눈 눈빛이 현실의 인연으로 연결됐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이 영화를 다시 봤을 때, 제가 받은 감동은 처음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처음엔 단순한 첫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아오이와 렌, 두 사람의 마음 속에 서로가 그토록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고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실 인연의 시작 (첫사랑, 헤이세이, 스다마사키)
실 인연의 시작 (첫사랑, 헤이세이, 스다마사키)


첫사랑

영화 <실: 인연의 시작>은 일본 국민 가수 나카지마 미유키의 곡 '실'(糸)에서 출발합니다. 가사 속에서 이 실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운명의 매개체로 기능합니다. 가로실과 세로실이 교차하며 한 장의 천을 완성하듯, 두 사람의 인생이 엇갈리면서도 끝내 맞닿는다는 구조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테마입니다.

이 영화가 '노래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라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열세 살에 처음 만난 렌과 아오이의 관계는 단순히 설레는 첫사랑이 아닙니다. 아오이는 새아버지의 폭력과 집안의 빚이라는 무게를 등에 지고 있고, 렌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를 지키려 했습니다. 어린 두 사람이 어른들의 세계 앞에서 맥없이 헤어져야 했던 그 장면이 유독 오래 남았습니다.

순애보(純愛譜)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다른 조건 없이 오직 한 사람을 향한 순수한 사랑을 의미하는데, 렌이라는 캐릭터는 그 정의에 가장 가까운 인물입니다. 8년이 지나도, 상대가 다른 사람과 연애 중이어도 그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보는 내내 답답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런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위로가 됐습니다.


헤이세이 30년을 배경으로 

이 영화가 단순한 로맨스물과 결정적으로 다른점은 헤이세이(平成) 시대, 즉 1989년부터 2019년까지의 역사를 배경으로 삼는다는 부분입니다. 헤이세이 시대란 일본 아키히토 일왕의 재위 기간으로, 버블 붕괴 이후의 장기 침체, 고베 대지진, 리먼 브라더스 사태, 동일본 대지진 등 굵직한 사건들이 연속된 격동의 30년을 의미합니다.

영화는 이 역사적 사건들을 단순한 시대 배경으로만 쓰지 않습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Lehman Brothers Collapse), 즉 미국 대형 투자은행의 파산으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펀드 매니저로 일하던 아오이의 커리어에 직격탄을 날립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렌의 삶을 뒤흔들며 두 사람의 재회를 다시 한번 비틀어 놓습니다. 개인의 감정선이 시대의 파고와 겹쳐지는 방식이 꽤 정교합니다.

제 생각에 이런 구조의 영화는 자칫 역사 다큐멘터리처럼 무거워지기 쉬운데, 이 작품은 그 균형을 잘 잡고 있습니다. 사건 자체를 설명하기보다 그 사건이 인물들의 선택과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렌이 홋카이도 치즈 공방에서 묵묵히 일하는 장면들은, 그 자체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일본 경제 침체기의 분위기를 조용하게 담아냅니다.


스다 마사키, 고마츠 나나 

이 영화를 둘러싼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주연 배우 두 사람의 실제 관계입니다. 스다 마사키와 고마츠 나나는 촬영 기간 중 실제 연인으로 발전했고, 이후 결혼에 이르렀습니다. 

케미스트리(Chemistry)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두 배우가 공연이나 촬영 현장에서 빚어내는 자연스러운 감정적 교류와 호흡을 뜻하는데, 이 두 사람의 경우는 그 케미가 단순히 스크린 위의 현상에 그치지 않았던 셈입니다. 특히 말보다 눈빛과 침묵으로 감정을 쌓아가는 장면들에서 제가 느낀 어색함 없는 몰입감이, 어쩌면 그 진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조연진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사이토 타쿠미, 야마모토 미즈키 등 탄탄한 조연 배우들이 각자의 사연을 갖고 이야기를 채우면서, 주인공 두 사람의 서사만으로 허전해질 수 있는 공간을 채워줍니다. 제가 보면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이들이 단순히 주인공의 배경으로만 기능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마다 완결된 서사를 가진 사람들로 그려지기 때문에 영화 전체가 훨씬 밀도 있게 느껴졌습니다.

일본 영화진흥기구(日本映画製作者連盟)에 따르면 이 작품은 2020년 일본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진입했으며, 코로나19로 극장가가 위축된 시기임에도 꾸준한 관객 동원을 기록했습니다. 두 배우의 실제 관계가 알려지면서 화제성이 더해진 영향도 있었겠지만,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아오이는 이기적인가 

이 영화에서 제가 오래 생각한 것은 아오이라는 캐릭터입니다. 아오이를 이기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힘들 때마다 렌을 떠올리지만, 정작 상황이 나아지면 자기 삶으로 돌아가는 패턴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해석이 아오이의 트라우마(Trauma)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학대와 야반도주, 강제적 이별을 경험한 아오이가 성인이 되어 성공에 집착하는 방식은 그 상처를 스스로 봉합하려는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로 보입니다. 

제가 이 캐릭터를 보면서 답답함보다 안타까움을 더 많이 느꼈던 건, 그녀가 렌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렌만이 자신에게 안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감정이 의식적인 선택인지 무의식의 끌림인지조차 아오이 본인도 명확히 알지 못하는 것처럼 묘사된다는 점이 오히려 현실적이었습니다.

렌의 순애보적 기다림이 미덕인지 집착인지에 대한 해석도 엇갈립니다. 하지만 저는 영화가 그 어느 쪽에도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는 것을 장점으로 봅니다. 보는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대입할 수 있는 여백이 생깁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느낀 것은, 사랑 자체보다 그 사랑이 제때 닿지 못했던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이었습니다. 렌과 아오이는 서로를 향한 마음이 없었던 적이 한 번도 없는데, 항상 조금씩 어긋난 시점에 서 있었습니다. 그 어긋남이 운명의 장난처럼 보이기도 하고, 각자의 선택처럼 보이기도 해서 단순히 '안타깝다'는 말로는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극적인 고백이나 드라마틱한 재회보다 눈빛과 침묵이 쌓이는 장면들이 더 기억에 남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