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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작 일본 영화를 다시 보게 된 건순전 히 야쿠쇼 코지 때문이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한동안 자리를 못 뜨고 앉아 있었습니다. 《쉘 위 댄스?》는 중년 남성이 댄스 교습소에 들어가면서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되찾는 이야기입니다. 불륜도 아니고, 드라마틱한 반전도 없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은 영화였습니다. 오랫만에 다시 봤지만 올해의 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의 감정이었습니다.

야쿠쇼 코지가 몸으로 증명한 것
주인공 스기야마는 연기를 하는 게 아닌 것처럼 그냥 그 사람인 것처럼 자연스러웠습니다. 퇴근길 전철 안에서 유리창에 이마를 기댄 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첫 장면부터 그랬습니다. 대사 한 마디 없이, 저는 이미 이 남자가 얼마나 지쳐 있는지, 얼마나 무료한지를 느꼈습니다.
주인공 스기야마는 경리 과장입니다. 여기서 경리 과장이란 단순히 숫자를 다루는 사무직이 아니라, 1990년대 일본의 전형적인 '회사 인간'을 상징합니다. 융자로 집을 마련하고, 아내와 딸을 부양하고, 동기들 중 가장 먼저 승진하고, 그러면서도 삶에 뭔가 빠진 것 같은 공허함을 안고 사는 남자. 저도 그 공허함이 어떤 건지 어렴풋이 알기 때문에, 스기야마가 댄스 교습소 계단 앞에서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라며 발길을 돌리려다 결국 문을 여는 장면에서 마음이 크게 동요했습니다.
야쿠쇼 코지는 이 영화로 키네마 준포 남우주연상과 일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했습니다. 상을 받은 이유를 영화 중반부 한 장면에서 단번에 이해했습니다. 댄스 선생인 마이와 마주 앉아 이곳에 온 계기를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처음에는 수줍고 눈도 못 마주치는데, 춤이 정말 좋아졌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눈빛이 달라집니다. 같은 배우가, 같은 장면 안에서, 두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 변화가 대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표정과 자세와 호흡에 있었습니다.
내면 변화를 몸 전체로 표현하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비를 흠뻑 맞으면서 혼자 스텝을 밟는 장면. 대사 없이, 음악 없이, 그냥 비와 춤뿐인 그 장면에서 진짜 행복이 어떤 모습인지를 봤습니다. 2023년 《퍼펙트 데이즈》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배우의 출발점이 이 영화였다는 것이, 전혀 놀랍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는 야쿠쇼 코지를 국민 배우 반열에 오르게 하였고, 아시아권 밖에서도 폭넓은 공감을 얻은 작품입니다. 타케나카 나오토의 조연 연기도 적재적소에서 영화의 맛을 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일상의 발견이라는 것
수오 마사유키 감독은 이 영화에서 딱 하나만 말합니다. 지금 살고 있는 삶을 버리지 않아도 된다고. 스기야마는 직장도 가족도 그대로 두고, 그냥 댄스 교습소에 다니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작은 균열 하나가 그의 전부를 바꿨습니다.
여기서 사교댄스(ballroom dance)란 파트너와 신체 접촉을 전제로 하는 무도입니다. 단순히 스텝을 맞추는 기술이 아니라, 상대의 호흡과 무게 중심을 읽어야 완성되는 움직임입니다. 1990년대 일본에서 이것이 유독 민감하게 받아들여진 이유가 있었습니다. 영화 서두에 자막으로 설명하듯, 손을 잡고 거리를 걷지도,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도 않는 나라에서 낯선 이와 몸을 맞대는 행위는 그 자체로 파격이었습니다. 아내가 흥신소를 고용해 남편을 미행하는 설정이 웃기면서도 설득력 있는 건, 그 문화적 맥락이 탄탄하게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조연들의 서사였습니다. 버블 경제(バブル経済) 붕괴란 1990년대 초 일본의 부동산·주식 과열이 꺼지며 사회 전반에 무력감이 퍼진 경제적 사건을 말하는데,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그 무력감의 한복판을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살을 빼려고 온 사람, 웃음거리가 두려운 사람, 전성기가 지났다고 느끼는 사람. 이자카야에서 병맥주를 기울이며 춤 얘기를 나누는 그 장면이, 아무 사건도 없는데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거기엔 직급도 학벌도 없고, 오늘 레슨에서 무엇이 좋았냐 정도의 이야기뿐이었으니까요.
제 생각에는 영화가 끝난 뒤에야 진짜 질문이 시작됩니다. 저도 회사와 집을 오가면서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나 자신'을 언제부터 잃어버렸는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스기야마가 대회에서 아내와 눈이 마주쳐 스텝을 잃는 장면은 숨겨온 세계와 지켜온 세계의 충돌입니다. 그가 춤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가, 마이의 송별 파티에서 다시 손을 잡는 순간은 단순한 화해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 사람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그 기쁨을 나누는 장면입니다. 저는 그 마지막 왈츠를 보면서, 좋아하는 일이 있는 사람의 등은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영화 개봉 이후 실제로 일본에서는 사교댄스 붐이 일어났습니다. 퇴폐적이라는 편견이 있던 취미가 한 편의 영화로 사회적 인식을 바꾼 사례는 흔하지 않습니다. 1996년 개봉작인데 올드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는 것은, 이 영화가 시대가 아니라 인간을 찍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쉘 위 댄스?》를 보고 나서 저는 한동안 '나를 설레게 하는 게 지금 뭐가 있나'를 생각했습니다. 영화가 그걸 직접 물어본 건 아닌데, 스기야마의 등이 펴지는 걸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질문이 따라왔습니다. 개봉한 지 30년이 된 영화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은, 결국 시대가 아니라 사람을 찍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일상이 밋밋하게 느껴진다면, 무엇인가 한 번 도전해 봐도 좋습니다. 거창한 결단이 아니어도 됩니다. 퇴근길에 낯선 역에 한 번 내려보는 것, 그 정도의 용기면 충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