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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AI 이야기를 이렇게 정면으로 다룰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상실과 가족을 다루는 감독이라는 인상이 워낙 강했으니까요. 그런데 보고 나서 한참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생각보다 훨씬 불편하고 무거웠기 때문입니다.

 

상자 속의 양 리뷰 (배경, 애도의 윤리, AI 공존)
상자 속의 양 리뷰 (배경, 애도의 윤리, AI 공존)


배경, 죽은 아이를 닮은 로봇

영화의 배경 설정 자체가 이미 꽤 도발적입니다. 7살짜리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부부, 오토네와 켄스케. 그들에게 리버스(REbirth) 프로젝트라는 업체의 안내가 도착합니다. 여기서 리버스 프로젝트란 사망한 가족의 사진, 영상, 음성 데이터를 학습시켜 외형과 말투까지 동일하게 구현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제공하는 서비스입니다. 쉽게 말해 죽은 사람을 기술로 복원하는 것입니다.

오토네는 거의 오열하듯 홍보 영상을 봤다고 합니다. 저는 그 장면이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슬픔이 극에 달하면 인간은 판단보다 감성이 먼저 움직이니까요. 반면 켄스케는 처음부터 거부감을 숨기지 않습니다. 다마고치나 로봇청소기와 뭐가 다르냐고 말하죠.

흥미로운 건 집의 구조입니다. 건축가인 오토네의 집은 'ㅁ'자 모양의 폐쇄형 설계로, 안에 마당이 있지만 밖에서는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감독은 이 집 구조를 통해 부부의 심리 상태를 시각화합니다. 세 명이던 가족에서 한 명이 빠졌을 때, 삼각 구조를 유지하던 기둥이 무너지는 것처럼 집 전체가 흔들리는 상태라는 것이죠. 오토네가 카케루 로봇을 들인 건, 어쩌면 건축가의 본능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빠진 기둥 자리를 채우려는.

또 한 가지. 영화 초반부터 물이라는 상징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오토네가 업체에 보낸 사진과 영상이 죄다 물놀이 장면이었고, 카케루 로봇은 그 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여기서 물이란 경계 없이 뒤섞이는 합일의 공간을 뜻합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명확하게 말합니다. 카케루 로봇은 결코 인간과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없다고요.


애도의 윤리, 상자 속의 양

영화 제목이 된 어린 왕자의 그 장면, 기억하실 겁니다. 조종사가 양을 아무리 그려줘도 어린 왕자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다가, 구멍 뚫린 빈 상자를 보고 나서야 웃음을 짓습니다. "네가 원하는 양은 이 안에 있어." 형태가 없기 때문에, 보는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그 안에 투영할 수 있는 거죠.

영화는 이 구조를 그대로 가져옵니다. 카케루 로봇이 바로 그 빈 상자입니다. 오토네는 그 상자 안에 죽은 아들을 집어넣었고, 켄스케도 조금씩 그 상상에 기댔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 영화를 "휴머노이드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묻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감독 인터뷰를 찾아보니 핵심이 달랐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서 여전히 작동하는 소유와 통제의 욕망을 발전된 기술의 그늘로 드러내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죽은 사람의 존재를 불러와 사용하다가, 또 자기 마음대로 떠나보내는 행위. 그게 어쩌면 그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일일 수 있다는 질문이었던 거죠.

특히 오토네의 마지막 대사가 제 머릿속을 오래 맴돌았습니다. "상자 속의 양은 카케루가 아니라 나였다." 이 한 문장이 영화 전체를 뒤집습니다. 오토네는 카케루라는 빈 상자 안에 자신의 결핍과 욕망을 채워 넣고 있었던 거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믿었던 겁니다. 카케루 로봇이 유독 어른스럽고 점잖게 그려진 것도, 어쩌면 엄마가 원하는 상자의 형태에 로봇이 맞춰진 결과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목수인 켄스케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그는 가공되지 않은 나무의 결과 체온을 중시하는 사람입니다. 눈에 보이는 물성(物性), 즉 실제로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것을 신뢰하는 인물이죠. 여기서 물성이란 나무의 질감, 온도, 습도처럼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 감각적 특질을 의미합니다. 그런 그가 카케루 로봇을 밀어냈던 건, 단순한 냉정함이 아니라 그의 직업적 정체성 때문이었습니다. 설계된 것에 대한 본능적인 불신이었죠.

목재 장인이 나무 조각에 귀를 대면 숲의 소리가 들린다고 말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소라 껍데기에서 바다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요. 물리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소리를 인간은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믿고 싶기 때문이죠. 카케루 로봇에게 죽은 아들의 온기를 느끼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대상이 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인간이 그렇게 상상하는 겁니다. 하지만 카케루 로봇에게 침묵은 그저 0의 데이터일 뿐입니다. 그 차이가 이 영화의 핵심적인 단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감독이 처음 각본에서는 부부와 휴머노이드가 계속 함께 사는 결말을 썼다가, 카케루가 떠나는 쪽으로 바꿨다는 사실도 알고 나서 꽤 당황했습니다. 표면은 새로운 가족 형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풀고 있는 문제는 상실을 어떻게 끝내고 놓아주는가라는 애도의 윤리(grief ethics)였던 거니까요. 여기서 애도의 윤리란 죽은 사람을 기억하되, 그 기억을 산 사람의 욕망으로 덮지 않고 고인 자신의 것으로 돌려주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AI 공존, 우리가 맞이할 미래

영화 후반부에 부부와 카케루 로봇은 함께 올리브 나무를 심습니다. 그것도 마당이 아니라 대문 밖,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집 마당에 심겨 있던 레몬 나무가 죽음과 애도의 상징이었다면, 올리브 나무는 평화와 상생의 이미지입니다. 이 장면 하나로 부부가 어디쯤 왔는지가 보입니다. 닫혀 있던 'ㅁ'자 집이 처음으로 바깥을 향해 열린 순간이니까요.

그리고 카케루 로봇이 직접 그 나무에 물을 줍니다. 물에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물을 주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정확한 은유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과 완전히 하나가 될 수는 없어도, 인간이 심은 것이 자랄 수 있도록 곁에서 도울 수 있다는 것. 그게 AI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의 가장 솔직한 묘사 아닐까요.

물론 저는 이 결말이 동화처럼 느껴진다는 점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현실에서 AI와 로봇에 인격을 부여하는 문제는 훨씬 복잡합니다. 현재 50개국 이상이 AI 윤리 원칙을 수립했지만, 실제 법적 인격 부여나 권리 논의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감정처럼 보이는 것과 실제 감정이 같은가, 인간의 뇌를 모방한 알고리즘이 도덕적 감수성을 가질 수 있는가 — 이런 질문들은 영화가 제시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랜 논쟁을 요구합니다.

버려진 안드로이드들과 아이들이 함께 숲으로 가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AI가 인간의 존엄성과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지만, 영화 속 숲의 이미지처럼 완전한 통합도, 완전한 분리도 아닌 '나란히 서는' 상태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지는 아직 아무도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오래 생각한 건 어린 왕자의 결말이었습니다. 어린 왕자는 뱀에게 물려 몸을 떠나는 방식으로 자기 별로 돌아가고, 조종사는 그 별에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믿습니다.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사랑했던 존재가 안전한 곳으로 갔다고 믿는 것. 그게 어쩌면 죽은 사람을 온전히 보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부부가 카케루를 떠나보내고, 보이지 않지만 어디선가 살아있다고 상상하며 사는 것도 같은 구조입니다.

다만 솔직히 말하면, 이번 영화는 고레에다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설득력이 아쉬웠습니다. 절제와 디테일로 관객을 납득시키던 그 힘이, 이번엔 조금 약해진 느낌이었습니다. 상징은 명확한데 그 상징을 뒷받침하는 서사의 밀도가 얇았달까요. 질문은 심오하지만, 그 질문에 도달하는 과정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내린 결론은 하나입니다. 미래라는 상자를 성급하게 열어젖혀 그 안에서 인간의 유용성만 확인하려 든다면, 결국 마주하는 건 기능을 잃고 버려진 고철뿐이라는 것.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 상자를 억지로 열지 말고, 문밖에 올리브 나무 한 그루를 심고 물을 주는 방식의 공존을 제안합니다.

구조적 아쉬움이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던지는 질문 자체 — 죽은 사람은 누구의 것인가, 상실을 끝내는 것과 잊는 것은 다른가 — 에는 충분히 공감했습니다. 저는 이 질문이 머지않아 우리 모두가 실제로 마주할 질문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