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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원작 영화를 볼 때마다 드는 고민이 있습니다. 소설에서 충격적이었던 반전이 영상으로는 왜 그렇게 평범하게 느껴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영화 〈블랙 쇼맨〉을 보고 나서도 같은 질문을 안고 극장을 나왔습니다. 원작을 먼저 읽어서 더 그랬을 수도 있지만, 솔직히 이건 원작 독자가 아니라도 한번쯤 생각하게 될 지점이라고 봅니다.

후쿠야마 마사하루라는 선택
히가시노 게이고와 후쿠야마 마사하루라는 이름이 함께 붙으면 반사적으로 〈갈릴레오〉 시리즈의 유가와 마나부가 떠오릅니다. 제가 그랬고, 아마 일본 관객 대부분도 그랬을 겁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생기는 질문은 단순합니다. "이번 캐릭터는 유가와와 얼마나 다른가?"
유가와 마나부는 과학과 논리로 사건을 해부하는 인물입니다. 반면 가미오 다케시는 마술사라는 직업에서 갈고닦은 미스디렉션(misdirection)으로 사람을 움직입니다. 여기서 미스디렉션이란 관객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엉뚱한 곳으로 유도해 진짜 중요한 동작을 숨기는 마술의 핵심 기법입니다. 다케시는 이 기술을 수사에 그대로 가져옵니다. 상대가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말하게 만들고, 숨기고 싶은 감정을 스스로 드러내게 유도합니다.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이 역할을 나쁘지 않게 해냈습니다. 나름의 가미오 다케시를 만들어냈고, 마술 장면을 위해 직접 훈련을 거쳤다는 점도 눈에 보입니다. 손동작에서 대역을 쓰거나 CG로 때운 장면이 아니라 배우 본인의 손을 카메라가 따라간다는 인상이 있었고, 그 덕분에 다케시가 정말 오래 마술을 해온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캐스팅이 완전히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다케시에게 필요한 건 가볍고 날렵한 장난기입니다. 그런데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가진 이미지는 기본적으로 중년 남성의 무게감과 지적인 진중함에 가깝습니다. 연기는 안정적이지만, 캐릭터 특유의 "뻔뻔하고 능청스러운 쇼맨"이라는 감각이 조금 눌린 채로 전달됩니다. "배우가 잘 소화했다"는 평가와 "배역에 딱 맞는 배우다"라는 평가는 다릅니다. 제 경우엔 전자에 가깝습니다.
원작과의 비교
원작 소설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은 2020년 일본에서 출간됐고 국내에도 같은 해 번역 출판됐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캐릭터를 시리즈로 확장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첫 번째 작품의 역할은 세계관 구축보다 가미오 다케시라는 인물을 독자에게 각인시키는 것이었을 겁니다. 소설은 그 역할을 대화와 심리전으로 처리했고, 영화는 마술 트릭과 편집으로 처리했습니다.
제가 원작과 영화를 비교하며 가장 예상 밖이었던 지점은 마요와 아버지 에이치의 감정선이었습니다. 소설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꽤 건조하게 느껴졌습니다. 서로 애정이 없는 건 아닌데, 그 감정이 독자에게 직접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아리무라 카스미의 표정과 몸짓이 그 빈틈을 채웁니다. 대사 없이도 딸이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속도와 뒤늦게 올라오는 감정이 화면에서 살아납니다. 이 부분만큼은 영화가 원작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아쉬운 쪽은 동창생 캐릭터들의 사정입니다. 소설에서는 마을 재개발을 둘러싼 이해관계, 각 인물이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품고 있는 감정이 조금 더 자세하게 펼쳐집니다. 영화는 127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 이를 압축해야 했기 때문에, 일부 인물의 동기가 단순하게 정리된 채 마무리됩니다. 그 결과 진상이 밝혀지는 순간에 "그랬구나" 하는 이해는 생기지만, "정말 그랬다고?" 하는 강한 충격까지는 이어지지 않습니다.
콘텐츠 투어리즘(Contents Tourism)이라는 개념도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여기서 콘텐츠 투어리즘이란 애니메이션, 영화, 만화 등의 배경지나 관련 장소를 방문하는 관광 형태를 말합니다. 일본 지방도시에서 이미 활발하게 진행 중인 현상이고, 영화 속 마을이 인기 만화 《환뇌 라비린스》를 관광자원으로 삼으려는 설정은 이 현실과 정확하게 겹쳐집니다. 그 욕망이 살인사건의 배경이 된다는 구조가 단순한 미스터리 이상의 맥락을 만들어줍니다.
미스디렉션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캐릭터 표현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많지만, 반전의 강도에 대해서는 아쉽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저도 이 평가가 꽤 타당하다고 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미스터리의 강점은 트릭이 아니라 동기 구조에 있습니다. 〈용의자 X의 헌신〉처럼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이전 장면 전체의 의미가 뒤집히거나, 〈악의〉처럼 범행 동기의 구조 자체가 충격을 주는 방식입니다. 〈블랙 쇼맨〉은 그 수준의 반전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초반에 여러 용의자가 등장하고 비밀이 하나씩 쌓이는 과정은 충분히 재미있지만, 진상에 가까워질수록 사건이 오히려 단순해지는 인상을 줍니다. 이 점에서 "캐릭터 미스터리"라고 부르는 편이 정확합니다. 사건의 진상을 맞히는 게 목적이 아니라, 다케시가 사람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보는 작품이라는 뜻입니다.
구기미야 가쓰키 이야기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그는 《환뇌 라비린스》라는 작품으로 전국적인 인기를 얻은 만화가입니다. 그런데 대중이 인기 창작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재능만이 아닙니다. 때로는 삶 전체가 맑고 투명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습니다. 영화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중은 어떤 사람에게는 작은 흠도 용납하지 않으면서, 어떤 사람에게는 명확한 결격 사유가 있어도 능력과 인기를 이유로 눈을 감아줍니다. 그 기준이 어디서 오는지 쉽게 단정할 수 없습니다. 제 생각에 이건 꽤 보편적인 불균형이고, 영화는 그 불균형을 사건의 배경에 조용히 깔아 둡니다.
마술 용어로 치면 이 영화 전체가 포스(force)를 사용하는 구조입니다. 포스란 마술사가 관객에게 자유롭게 선택하게 해주는 것처럼 보이면서 실제로는 특정한 선택을 유도하는 기술입니다. 영화도 관객이 특정 인물을 의심하도록 유도하면서 정작 중요한 곳을 다른 방향으로 틀어놓습니다. 장치 자체는 잘 작동하는데, 진상의 무게가 그 구조를 받쳐줄 만큼 강하지 않다는 게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블랙 쇼맨〉은 히가시노 게이고 미스터리 중 가장 치밀한 작품을 기대하면 아쉬운 영화입니다. 사건의 진상이 캐릭터만큼 강하지 않고, 후반으로 갈수록 초반에 쌓은 긴장감이 단순하게 정리되는 느낌이 있습니다.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연기도 안정적이지만 가미오 다케시라는 역할에 완전히 맞아떨어진다는 인상은 주지 못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