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꽤 기대를 품었습니다. 그런데 116분이 끝나고 나서 든 첫 마디가 "이게 뭐지?"였습니다. 황화수소 중독 사망 사건, 미래 예측 능력, 복수극이라는 소재는 분명 흥미로웠는데, 영화는 그 재료를 제대로 요리하지 못한 느낌이었습니다. 오늘은 라플라스의 마녀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라플라스의 마녀 (줄거리, 등장인물, 영화 평가)
라플라스의 마녀 (줄거리, 등장인물, 영화 평가)


줄거리와 등장인물 

유명 온천 휴양지에서 영화 제작자가 황화수소 중독으로 숨진 채 발견됩니다. 제가 이 설정을 처음 접했을 때는 꽤 신선하다고 느꼈습니다. 황화수소(H₂S)란 화산 지대나 온천 지대에서 자연 발생하는 독성 기체로, 달걀 썩는 냄새가 특징이며 고농도에서는 순식간에 치사량에 도달하는 물질입니다. 영화는 이 자연 발생 기체를 살인 도구로 쓸 수 있느냐는 질문을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지구화학 전문가 아오에 슈스케(사쿠라이 쇼)는 "야외의 불안정한 기상 조건에서 특정인에게만 치사량을 흡입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단언합니다. 지구화학이란 지구를 구성하는 원소와 화합물의 분포·이동·순환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쉽게 말해 땅과 물, 대기에서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나는지를 추적하는 분야입니다. 형사 나카오카(타마키 히로시)는 그 반대로 보험금을 노린 살인이라 확신하고, 두 사람의 시각 차이가 초반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여기에 우하라 마도카(히로세 스즈)가 끼어들면서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마도카는 미래의 자연 현상을 예측하는 능력을 가진 인물로, 이를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개념과 연결 짓습니다. 라플라스의 악마(Laplace's Demon)란 18세기 수학자 피에르시몽 라플라스가 제안한 사고 실험으로, 우주의 모든 입자 위치와 운동량을 아는 존재라면 과거와 미래를 완벽하게 계산할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영화 제목이 바로 여기서 나왔습니다.


영화 평가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제가 가장 먼저 찾아본 것은 원작 소설의 독자 반응이었습니다. 소설은 평이 꽤 괜찮더군요.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과학 기반 추리 구조가 잘 살아 있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그러니 문제는 원작이 아니라 영화화 과정에 있다는 결론에 빠르게 도달했습니다.

미이케 다카시 감독이 연출을 맡았는데, 116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 원작의 방대한 내용을 우겨 넣으려다 보니 전개가 계속 휙휙 넘어갑니다. 제 생각에 이 영화는 관객이 캐릭터에 정서적으로 연결될 틈을 주지 않아서, 나중에 반전이 나와도 별로 놀랍지 않습니다. 실제로 사이세이가 진범으로 드러나는 장면에서도 제가 느낀 감정은 "아, 그렇구나" 정도였습니다.

서사 구조 측면에서 보면, 원작 소설은 마도카의 시점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런데 영화는 아오에 교수의 수사 과정과 여러 인물들의 시선을 동시에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 선택이 오히려 독이 됐습니다. 어느 시점을 따라가야 할지 모르겠는 상태에서 설명만 길게 이어지고, 정작 긴장감은 사라집니다. 미스터리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이 "나도 모르게 앞으로 몸이 기울어지는 순간"인데, 저는 그 순간이 단 한 번도 오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 제가 직접 느낀 점은 BGM이었습니다. 일본영화진흥기구의 2018년 흥행 통계에서도 이 작품은 기대 대비 낮은 성과를 거뒀는데, 현장의 긴박함을 살려야 할 장면에서 뜬금없이 흘러나오는 음악이 몰입을 완전히 끊어버렸습니다. 카메라 워킹 역시 2018년 개봉작이라고 하기엔 전반적으로 10년은 더 된 느낌이었습니다.

 

뇌 가소성(Brain Plasticity)이라는 개념이 이 영화의 핵심 장치입니다. 뇌 가소성이란 뇌가 손상이나 외부 자극에 반응해 구조와 기능을 스스로 재편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영화는 이 뇌 가소성이 극단적으로 발현될 경우 라플라스의 악마에 가까운 예측 능력이 생긴다는 설정을 씁니다. 이 부분은 SF적 상상력으로는 흥미롭지만, 현실의 신경과학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감안하고 봐야 합니다. 실제로 미국 국립신경학장애뇌졸중연구소(NINDS)의 연구 자료에 따르면, 뇌 수술 후 초월적 감각 능력이 생긴 사례는 임상적으로 보고된 바 없습니다. 즉, 영화의 설정을 SF로 받아들이면 괜찮지만, 추리 스릴러의 논리적 근거로 쓰기엔 설득력이 약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 볼 가치가 있는가

제가 이 영화를 끝까지 본 이유를 솔직히 말하면, 히로세 스즈와 후쿠시 소우타 때문이었습니다. 아마 배우 팬심이 없었다면 중반에 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이건 저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일본 현지에서도 배우 캐스팅으로 끌렸다가 내용에 실망했다는 반응이 다수였으니까요.

히로세 스즈가 연기한 마도카는 비주얼적으로는 완벽하게 "라플라스의 마녀" 이미지를 구현합니다. 무표정하게 상황을 예측하는 장면, 드라이아이스로 사건 현장을 재현하는 장면은 제가 봤을 때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장면 전후가 너무 급하게 붙어있어서 감동이 쌓이기 전에 이미 넘어가 버린다는 점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원작을 기반으로 한 영화들, 예를 들어 <용의자 X의 헌신> 같은 작품과 비교하면 이 차이가 더 분명하게 보입니다. 용의자 X는 핵심 감정선 하나에 집중해서 밀고 나갔고,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반면 라플라스의 마녀는 황화수소 중독 사건, 뇌 수술, 복수극, 부자 갈등, 라플라스 이론 전부를 담으려다가 어느 것도 완성하지 못한 느낌입니다.

원작 소설을 먼저 읽은 분이라면 아마 실망이 클 것입니다. 반대로 배우가 목적이거나, 일본 미스터리 분위기를 가볍게 접하고 싶은 분이라면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저는 후자라면 한 번쯤 보되, 너무 깊이 분석하려 들지 말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이라는 이름값과 화려한 캐스팅 덕분에 기대를 높이고 시작한 영화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고 내린 결론은, 그 기대가 오히려 실망의 깊이를 키웠다는 것입니다. 황화수소 중독이라는 독특한 소재,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철학적 설정, 아버지가 가족을 죽인 복수극이라는 감정선 — 이 세 가지만 해도 각자 한 편의 영화가 될 만한 소재들입니다. 그런데 그걸 116분에 전부 밀어 넣었으니 어느 것도 제대로 된 인상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원작 소설을 읽어볼 생각이 생긴 것은 오히려 이 영화 덕분이었습니다. 영화가 놓친 것들이 소설에는 살아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생겼으니, 그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