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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가 불타고 남은 건 재뿐이었습니다. 5년을 쏟아부은 공간이 하룻밤 새 사라진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꿈팔이 부부 사기단>은 그 질문에서 출발하는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장면 하나하나가 쉽게 넘어가지지 않았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선택하는 매 순간이 너무 실감났기 때문입니다.

인물분석
이 영화는 정말 예상 밖이었습니다. 평범해 보였던 부부가 사기를 치기로 결정한 것도 놀라웠는데, 실제로는 두 사람의 내적 균열을 정밀하게 해부하는 심리극에 가까웠습니다. 영화의 긴장감은 사기 현장이 아니라 칸야와 사토코 사이의 감정이 조금씩 어긋나는 순간들에서 발생합니다.
니시카와 감독은 인터뷰에서 "모든 인간은 선악의 양면을 동시에 갖는다"고 밝혔습니다. 이것이 이 영화의 핵심 전제입니다. 전작 <유레루>의 타케루, <우리 의사 선생님>의 이노처럼, 이번 칸야와 사토코 역시 어느 한쪽으로 규정할 수 없는 입체적 인물(round character)로 설계되었습니다. 입체적 인물이란 단일한 동기나 성격으로 설명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모순된 선택을 하는 인물을 말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몰입했던 지점도 바로 그 모순의 순간들이었습니다.
사토코의 감정 변화를 먼저 보면, 영화 초반 그녀가 돈봉투에 불을 붙였다가 다시 욕조에서 건져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분노 폭발이 아닙니다. 불태워버리면 칸야가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 그 더러운 돈이 동시에 부부의 꿈을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라는 사실이 뒤엉켜 있는 것입니다. 사토코에게 돈은 재산이 아니라 관계를 붙들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던 셈입니다.
반면 칸야의 변화는 방향이 다릅니다. 처음에는 사토코의 지시대로만 움직이던 그가, 중후반부터는 스스로 대상을 찾아 나섭니다. 역도 선수 히토미와 공무원 다키코의 가족을 진심으로 대하기 시작하면서, 칸야 안에서는 가게 재건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이 자라납니다. 감독은 이것을 남성의 과잉 애정(overflow of affection)이라 표현했는데, 여기서 과잉 애정이란 한 대상에 머물지 못하고 여러 관계로 동시에 진심을 쏟아버리는 남성 특유의 심리 패턴을 의미합니다. 저는 이 설명을 듣고 나서야 칸야가 단순한 나쁜 남편이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이해했습니다.
두 사람이 갈라서는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칸야의 칼입니다. 요리사에게 칼은 직업적 정체성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사토코가 다키코의 집에서 발견한 칸야의 칼은 아무 보호대도 없이 더러운 도마 위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상징적 연출은 대사보다 훨씬 날카롭게 꽂힙니다. 칼이 녹슬도록 내버려 둔다는 것은, 칸야가 '요리집 사장'이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선언과 다름없습니다. 사토코의 아이덴티티는 '요리집 사장의 아내'였으므로, 그 장면은 그녀의 존재 이유가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연출의도와 열린결말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40대가 되면서 일본 사회에서 여성이 살아가는 구조적 어려움을 더 깊이 체감하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그 경험이 이 영화의 밀도로 이어졌다는 걸, 저는 영화를 두 번 보고 나서야 제대로 납득했습니다. 한 번만 봐서는 장면마다 심어진 연출 의도를 다 흡수하기가 어렵습니다.
영상미 측면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채도(saturation) 전략입니다. 채도란 색의 선명함과 강도를 뜻하는데, 이 영화는 원색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무채색 계열의 팔레트를 고집합니다. 그 결과 화면 전체가 서늘하면서도 묘한 질감을 갖게 됩니다. 현실 같지만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이 느낌이 블랙코미디 장르와 정확히 맞물립니다. 제가 스틸컷을 뽑아 비교해 봤는데, 같은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도 실내냐 실외냐에 따라 채도가 다르게 보였습니다.
'글로리어스 파티' 장면도 그냥 넘어가면 안 됩니다. 이 파티는 일본에서 30~40대 미혼자들이 부담 없이 모이는 사교 행사로 실제로 성행합니다. 원래 파티 참석자는 칸야로 계획되어 있었지만 사토코가 대신 갑니다. 같은 여성의 눈으로 애정을 갈구하는 여성을 더 정확하게 포착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선택 하나에 감독이 여성의 외로움을 얼마나 세밀하게 들여다봤는지가 드러납니다.
캐스팅에도 감독의 치밀한 계산이 담겨 있습니다. 마츠 다카코는 청순한 이미지의 대명사였는데, 감독은 영화 <고백>에서 보여준 그녀의 악역 연기를 보고 사토코 역을 확신했다고 합니다. "품위 있지만 내면에 정체불명의 어둠이 있는 배우"라는 평가가 사토코라는 인물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아베 사다오의 캐스팅은 더 흥미롭습니다. 감독이 경찰을 통해 실제 결혼 사기범을 리서치했더니, 잘생기고 완벽한 외모의 남성이 아니라 체구가 작고 친절해 보이는 평범한 남성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여성의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유형이었던 것입니다. 그 설명을 듣는 순간 사다오가 왜 칸야인지 완벽하게 이해가 됐습니다. 제 경우엔 이 캐스팅 비화를 알고 나서 영화를 다시 보니, 칸야의 모든 장면이 완전히 새롭게 보였습니다.
이 영화는 열린 결말(open ending)을 택합니다. 열린 결말이란 서사를 완전히 봉합하지 않고 독자나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방식입니다. 칸야는 출소 후 처음 돈을 받은 레이코에게 봉투를 돌려보내고,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곳에서 각자의 일을 하며 끝납니다. 가게 재건도, 재결합도 명시되지 않습니다. 감독은 이 결말로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간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존재의 이유가 무너진 뒤에도 사람은 그냥 살아갑니다. 그 담담한 사실이 어떤 화해나 회복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제 머릿속을 가장 오래 맴돈 대사는 "자기의 발로 길을 만들지 않으면, 인생은 비겁한 것이 되버려"였습니다. 사토코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동시에 제 상황에도 정확히 꽂혔습니다.
꿈팔이 부부 사기단은, 장면마다 감독이 심어둔 상징과 인물의 감정 변화가 촘촘하게 맞물려 있어서, 두 번 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씩 드러납니다. 저는 두 번을 보고 나서야 칸야와 사토코가 왜 그 선택을 했는지 온전히 이해했습니다. 오래 마음에 남는 작품을 찾고 있다면, 이 영화는 그 조건을 충분히 충족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