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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볼 타이밍을 잘못 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세상을 떠난 직후였고,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그 타이밍이 영화를 다른 무게로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가가 교이치로 시리즈의 사실상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 〈기도의 막이 내릴 때〉는 사건이 해결된 뒤에도 마음 한켠이 묵직하게 가라앉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가가 교이치로
영화는 한 여인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가족을 두고 떠나 홀로 살다 심장마비로 숨진 여인, 그리고 그 소식을 뒤늦게 전해받는 아들. 그 아들이 아베 히로시가 연기하는 가가 교이치로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저는 이 영화가 단순한 미스터리물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가가 교이치로는 오랫동안 니혼바시 경찰서에 머물며 어머니의 과거를 아는 인물, '와타베'를 찾고 있었습니다. 미제 사건(未濟 事件)처럼 해결되지 않은 채 가슴속에 남아 있던 질문들을 풀기 위해서였죠. 가가에게 어머니의 삶은 16년이 넘도록 그런 상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다 가쓰시카의 한 아파트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피해자는 시가현에서 도쿄까지 왔다가 교살된 여성, 오시타니 미치코. 그리고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결정적 단서가 달력이었는데, 달마다 다리의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가가가 멈칫하는 장면이 제게는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방에서도 똑같은 방식의 달력을 봤기 때문이었죠.
아베 히로시가 이 장면을 연기하는 방식이 묘했습니다.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감정을 터뜨리지도 않아요. 오랫동안 이 인물을 연기해온 배우만이 낼 수 있는, 작지만 분명한 균열이 얼굴에 스쳤습니다. 제가 소설을 읽으며 머릿속에 그렸던 가가 교이치로의 모습과 상당히 겹쳤습니다.
사촌 동생 마쓰미야 슈헤이 형사는 피해자의 인간관계를 추적하다 유명 연극 연출가 아사이 히로미와의 연결고리를 발견합니다. 히로미는 중학교 동창인 미치코가 찾아왔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살인이 발생한 시간에는 완벽한 알리바이(alibi)가 있었습니다. 표면상 히로미는 용의선상에서 벗어나 있었죠.
하지만 가가는 달랐습니다. 히로미의 사무실 사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수사를 따라가면서 히로미의 아버지 아사이 다다오의 죽음에 의문을 품기 시작합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가가가 범인을 잡으려는 것인지, 어머니를 이해하려는 것인지 경계가 흐릿해 보였습니다. 그 흐릿함이 이 영화의 핵심이었습니다.
가가의 어머니가 가족을 떠난 이유도 서서히 드러납니다. 시댁의 괄시, 부재했던 남편, 혼자 감내해야 했던 육아와 우울증. 어느 날 식탁에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또 어느 날은 부엌 칼을 손에 쥔 채 멍하니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녀가 떠난 건 도피가 아니라, 아들에게 해를 끼치기 전에 스스로를 끊어낸 선택이었던 겁니다. 이걸 알았을 때 저는 가가가 왜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를 그리워했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히로미의 비밀
아사이 히로미를 연기한 마쓰시마 나나코는 이번 영화에서 유독 고단해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배역 탓이라 생각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돌이켜보니 그 고단함이 캐릭터 그 자체였습니다. 수십 년간 남의 이름으로 살아온 삶의 무게가 얼굴에 배어 있었던 거죠.
히로미의 과거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어머니 아사이 아쓰코가 거액의 빚을 지고 도망치면서 히로미와 아버지 아사이 다다오는 빚쟁이들을 피해 야반도주를 해야 했습니다. 노숙 상태로 떠돌던 어린 히로미는 자신을 겁탈하려는 인물을 죽이게 됩니다. 그 살인 사실을 묻어버리기 위해 아버지는 딸이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히로미는 피해자의 신분증을 이어받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합니다. 이것이 신분 세탁(身分 世濁)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된 채 배우로, 연출가로 성공한 겁니다.
부녀는 헤어진 채 일정한 날에만 만났습니다. 니혼바시 주변의 다리를 하나씩 정해두고, 그 날 그 장소에서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습니다. 달력에 적힌 다리 이름들은 바로 그 약속의 기록이었습니다. 제가 이 사실을 영화에서 확인했을 때, 달력이 단순한 물증을 넘어서는 물건이 됐습니다. 두 사람이 살아있다는 증거, 서로가 아직 존재한다는 신호였던 거죠.
가가가 서서히 진실에 다가가자, 히로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오랫동안 외면해온 어머니에게 찾아갑니다. 그리고 차마 옮기기 힘든 말을 내뱉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망친 사람에게 수십 년의 분노를 한꺼번에 쏟아낸 겁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히로미를 비난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때까지 감정을 누른 채 살아온 시간이 더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가가는 아버지 아사이 다다오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히로미를 유도심문합니다. 진실이 드러나고, 오랫동안 히로미 곁을 음지에서 지켜온 아버지는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로 결심합니다. 그 결심을 딸인 히로미가 돕습니다. 어릴 때 헤어지면서 아빠를 부르며 울던 어린 히로미의 장면과 교차되는 그 순간이, 솔직히 이번 영화에서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기도의 막이 내릴 때〉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범죄 서사(犯罪 敍事), 즉 범죄를 둘러싼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결국 가족 간의 관계와 상처를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범죄 서사란 단순히 누가 범인인지를 쫓는 것이 아니라, 그 범죄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인간관계와 감정의 흐름을 함께 추적하는 이야기 방식입니다. 이 작품은 그 방식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히가시노의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
영화는 소설보다 구조를 단순화했습니다. 하지만 그 단순함이 오히려 두 주인공의 감정을 더 또렷하게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소설에서는 여러 인물의 시점이 교차되면서 퍼즐 맞추는 재미가 있었다면, 영화는 가가와 히로미 두 사람이 각자의 과거를 향해 걸어가는 여정처럼 느껴졌습니다. 결말에 이르러 사건은 정리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혀 시원하지 않았습니다. 답을 얻었는데 마음이 더 무거워지는 미스터리는 처음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사건은 해결됐고, 가가 교이치로는 어머니에 대한 답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려주지는 않았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시리즈를 통해 마지막으로 꺼내놓은 이야기는, 진실을 안다는 것과 상처가 낫는다는 것이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