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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이 전부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그들이 진심으로 엮일 때"를 보고 나서 그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엄마가 있어도 늘 혼자였던 열한 살 토모의 이야기는, 제가 생각해 온 '가족'의 정의를 다시 묻게 만들었습니다. 트랜스젠더 린코, 외삼촌 마키오, 그리고 토모. 이 세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일상이 왜 이렇게 따뜻하게 느껴지는지, 보는 내내 저는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가족해체, 트랜스젠더, 모성애)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가족해체, 트랜스젠더, 모성애)


가족해체의 빈자리

토모의 엄마는 남자가 생기면 집을 나갑니다. 아이가 혼자 남아 있다는 걸 알면서도요. 이 장면을 보면서 저는 토모의 삼촌이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표현. 

삼촌은 누나가 우선순위를 모른다고 했지만, 제가 보기엔 토모 엄마는 정확히 알고 있는 겁니다. 자신의 쾌락이 아이보다 먼저라는 걸요. "모르겠다"는 말은 가장 편리한 회피이고, 책임을 모호하게 만드는 방어막이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가족해체(family dissolution)라는 사회 현상을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한부모 가구는 2022년 기준 약 160만 가구를 넘어섰습니다. 일본 역시 후생노동성 자료 기준으로 한부모 가구가 꾸준히 증가 추세입니다. 토모의 이야기가 멀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늘 삼각김밥만 먹던 아이는 삼각김밥을 보면 구역질이 날 지경이 됩니다. 그 장면 하나가 엄마의 부재를 어떤 대사보다 선명하게 보여줬습니다. 이 짧은 장면이 나의 마음에도 오래 남았습니다.

토모 엄마의 반복적 가출로 외삼촌 마키오가 사실상 보호자 역할을 대신하고 있고, 토모가 엄마의 부재에 익숙해져서인지 학교 아이들의 놀림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아이가 된 것이 마음 아프고 기특했습니다.


트랜스젠더 린코의 모성애 

트랜스젠더란 태어날 때 지정된 생물학적 성별과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 정체성이 다른 사람을 말합니다. 린코는 그 정체성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시선을 받았을 테지만, 영화에서 그녀는 늘 온화합니다. 처음에는 그 온화함이 의아했습니다. 저라면 저렇게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린코가 온화할 수 있는 이유가 영화 중반쯤 나옵니다. 그녀의 어머니가 어린 린코를 여자로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줬기 때문입니다. 그 따뜻함과 지혜로움이 린코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고, 그것이 토모에게 전해집니다. 위로를 받아본 사람이 위로를 해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린코가 정성껏 싸준 도시락을 토모가 아까워서 뒤늦게 먹다가 배탈이 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울컥했습니다. 아껴 먹는다는 건 그만큼 소중하다는 뜻이고, 소중한 게 생긴 적이 없었던 아이라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그 짧은 장면 하나가 토모의 결핍을 전부 설명해 줬습니다.

모성애는 생물학적 출산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린코가 토모에게 느끼는 감정이 정확히 그것입니다.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몸이지만, 토모를 품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보다 강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혈연이어야 진짜 가족"이라는 통념에 영화는 조용히 반박합니다.


'일반적'이라는 기준 

마트에서 카이의 엄마가 린코를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아들에게 토모와 어울리지 말라고 하는 장면. 이 장면 또한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카이가 "일반적인 게 뭔데요?"라고 묻자, 엄마는 "일반적인 게 일반적인 거지, 이상하지 않은 것"이라고 답합니다. 실질적인 근거 없이 편견을 정당화할 때 자주 이렇게 말하죠.

이 장면을 보면서 저는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하나씩 떠올려봤습니다. 트랜스젠더인 린코, 한부모 가정인 토모, 성정체성을 탐색 중인 카이, 트랜스젠더와 사랑하는 마키오, 연하 애인과 사는 린코의 어머니. 이 중 사회가 말하는 '일반적인' 기준에 딱 맞아떨어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이 사람들을 그냥 사람입니다. 누군가를 아끼고, 밥을 먹고, 다투고, 화해하는 사람들. 저는 이 부분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거창하지 않게 조용히 전달하는 메시지.

성정체성, 사회적 편견과 충돌할 때 심각한 심리적 압박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카이가 바로 그 압박을 겪고 있는 인물입니다. 토모는 그런 카이에게 특별히 설명하거나 위로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같이 있어줍니다. 그것이 가장 옳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사회적 낙인, 린코가 병원에서조차 인권침해를 당하는 장면이 그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고, 토모가 그 자리에서 린코 대신 울분을 터뜨리는 장면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됐습니다.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는 큰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핏줄이 아니어도 진심이 있으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린코와 토모가 도시락 하나, 뜨개실 하나로 당당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밀어냈던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저는 아주 조금 마음이 넓어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