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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몬트리올 영화제 그랑프리, 쇼치쿠 일본 역대 흥행 1위. 영화 한 편이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거머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솔직히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죽음을 다룬 영화가 이렇게까지 사랑받을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크레딧이 올라갈 때 제 눈은 이미 벌개져 있었습니다.

 

굿바이 (납관사, 죽음의 의미, 아카데미 수상)
굿바이 (납관사, 죽음의 의미, 아카데미 수상)


납관사라는 직업

영화의 주인공 코바야시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는 도쿄 오케스트라 소속 첼리스트였습니다. 악단이 갑작스럽게 해산되면서 고향으로 내려온 그가 우연히 발을 들인 곳이 바로 납관사 사무실이었습니다. 구인 광고에는 "연령 무관, 정규직 보장"이라고만 적혀 있었으니, 처음엔 여행 가이드 회사인 줄 알았다는 설정이 웃프게 다가옵니다.

납관사(納棺師)란 고인의 유체를 정결하게 처리하고 수의를 입혀 관에 모시는 전문 의례인을 뜻합니다. 한국으로 치면 염습사에 가깝습니다. 쉽게 말해 고인이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떠나기 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족 앞에 설 수 있도록 준비해 드리는 사람입니다. 일본에서는 이 직업을 "염장이"라 부르며 사회적 편견이 상당히 강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장면이 바로 그 부분이었습니다. 다이고가 납관사 일을 한다는 걸 안 친구와 아내가 경멸 섞인 눈길을 보내는 장면이요. 그런데 역설적으로, 염을 마친 이쿠에이(야마자키 츠토무)와 다이고에게 가족들이 고개를 깊이 숙이며 "아내가 오늘 제일 아름다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 편견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바로 드러납니다.

이 장면에서 제가 느낀 건 단순한 감동이 아니었습니다. 직업의 귀천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얼마나 허약한 근거 위에 서 있는지를 새삼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죽음의 의미

영화는 다양한 죽음의 형태를 통해 삶을 반추하게 만듭니다. 다이고가 이쿠에이에게 처음 불려간 현장은 고독사(孤獨死)한 어르신의 집이었습니다. 고독사란 가족이나 지인 없이 홀로 사망하여 상당 기간 발견되지 못하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세상과 단절된 채 맞이하는 마지막입니다. 악취와 부패가 공간을 가득 채운 그 장면에서 다이고가 토할 것 같은 표정으로 버티는 모습은, 현실이 낭만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반면 영화 중반에 등장하는 성전환 여성의 염습 장면은 전혀 다른 무게를 갖습니다. 남성의 몸으로 살았지만 여성으로 기억되고 싶었던 사람, 그 마지막 모습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를 두고 이쿠에이가 내리는 조용한 결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예상 밖으로 오래 멈칫했던 건, 그게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고인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전문적인 판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대사 중 제 머릿속에 가장 오래 남은 건 이쿠에이가 오랜 친구에게 건네는 말이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하나의 문으로 통과해서 다음 세상으로 향해 가는 거야. 난 그 문을 지키는 문지기야." 이 대사 한 줄이 납관(納棺)이라는 행위 전체를 재정의합니다. 납관이란 단순히 시신을 관에 넣는 절차가 아니라, 고인이 다음 세상으로 나아가는 의식임을 선언하는 것이죠.

일본의 장례 문화를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납관 의식은 고인의 몸을 청결히 하는 청拭(청식) 과정과 수의를 입히는 장속(裝束) 과정으로 세분화되며, 이는 불교적 세계관에서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준비시키는 의례로 이해됩니다. 영화가 그저 감성에 호소하는 게 아니라 실제 문화적 맥락 위에 서 있다는 점에서, 보는 내내 신뢰가 쌓였습니다.

 

아카데미 수상작

영화 굿바이는 2009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몬트리올 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았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되었으며, 제작사 쇼치쿠의 역대 흥행 1위를 기록했습니다. 숫자만 보면 이 영화는 완벽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고 느낀 건 조금 달랐습니다. OST를 히사이시 조가 맡았다는 사실에 상당히 기대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눈물을 닦고 나서야 "맞다, 음악이 있었지" 싶을 정도로 기억에 선명하게 남지 않았습니다. 이건 칭찬이기도 하고 아쉬움이기도 합니다. 히사이시 조 특유의 선율이 영화에 완벽하게 녹아들어 배경 자체가 되어버렸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러닝타임은 130분입니다. 이 정도 길이라면 다소 길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제 경우엔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슬쩍 시계를 확인했습니다. 다이고가 여러 고인의 염습에 적응해가는 에피소드들이 반복되다 보니, 구조적으로 비슷한 패턴이 이어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특히 후반부 아버지 관련 에피소드는 영화의 감정적 클라이맥스로 기능하지만, 앞서 쌓아온 이야기들이 또 한 번 같은 방식으로 반복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체에 흐르는 시선이 담담하다는 점은 분명한 강점입니다. 죽음을 비극으로 확대하지 않고, 그것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온도를 있는 그대로 포착합니다. 이 영화는 보는 도중보다 보고 나서 더 오래 남습니다.

영화 굿바이는 죽음을 소재로 삼았지만, 결국 삶의 밀도를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납관사라는 낯선 직업을 통해 우리가 고인을 어떻게 기억하고, 어떤 방식으로 이별을 준비하는지를 조용하게 묻습니다. 제가 보는 내내 무거우면서도 어딘가 따뜻했던 건, 그 질문이 결코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카데미 수상작이라는 수식어 없이도 충분히 볼 이유가 있는 영화입니다. "다녀오세요, 다시 만나요, 우리"라는 마지막 인사가 가슴 속에 오래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