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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3시간짜리 일본 영화라길래 중간에 졸 각오를 했는데, 가부키 공연 장면이 나올 때마다 오히려 더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이상일 감독의 2025년작 《국보(國寶)》는 일본 역대 실사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작품입니다. 한 남자가 야쿠자의 아들로 태어나 인간국보에 오르기까지, 50년의 시간을 그 러닝타임 안에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국보 영화 리뷰 (줄거리, 온나가타, 퀴어서사)
국보 영화 리뷰 (줄거리, 온나가타, 퀴어서사)


줄거리

1964년 나가사키, 소년 키쿠오는 눈앞에서 야쿠자 보스인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복수심에 칼을 쥐려던 그를 붙잡은 건 아버지의 보호를 받던 가부키 거장 한지로 하나이였습니다. 이후 키쿠오는 오사카로 향해 한지로의 집에 맡겨지고, '정직하고 평범하게 살라'던 어머니의 유언을 품은 채 역설적이게도 가장 치열한 가짜 세계인 가부키 무대에 발을 들입니다.


한지로의 친아들이자 혈통의 후계자인 슌스케와 함께 수련을 시작하면서, 두 소년은 형제이자 라이벌이 됩니다. 키쿠오는 스승조차 두려워할 만큼 모든 걸 흡수하는 재능을 보였고, 이에 반해 슌스케는 점점 질투와 열등감에 잠식되어 갔습니다. 두 사람은 '토-한 듀오'라는 이름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함께 비상했지만, 가부키라는 세계는 혈연과 전통이라는 철벽으로 세워진 성입니다. 야쿠자의 아들인 키쿠오는 아무리 빛나도 침입자일 뿐이었습니다.

전환점은 스승 한지로가 교통사고로 쓰러지면서 찾아왔습니다. 그는 친아들 슌스케 대신 키쿠오를 대역으로 세우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고, 분노한 슌스케는 집을 떠났습니다. 홀로 남은 키쿠오는 '한지로 하나이 3세'의 자리에 올랐고, 스승은 숨을 거두며 말했습니다. "가부키의 예술 자체가 너의 복수다." 그 한마디가 키쿠오의 남은 생을 통째로 지배하게 됩니다.


온나가타 

영화를 보고 나서 가부키의 역사를 직접 찾아봤는데, 몰랐던 사실을 하나 알게 됐습니다. 영화는 17세기 교토에서 쇼군이 '도덕적 타락'을 이유로 무대에서 여성의 출연을 금지했다는 자막으로 문을 엽니다. 온나가타(女形)란, 바로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탄생한 역할입니다. 쉽게 말해 남자 배우가 여성 역할을 전담하는 가부키 고유의 연기 장르로, 단순히 여장을 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평생 여성의 몸가짐과 영혼을 체득하는 수련의 경지를 가리킵니다. 저는 이 역사적 배경을 알고 나서야 키쿠오가 왜 그토록 자신을 갈아 넣어야 했는지가 비로소 이해됐습니다.

극 중 키쿠오에게 주어진 "바닥 없는 빈 그릇"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처음엔 순수한 칭찬처럼 들리지만, 사실 이건 예찬이자 저주입니다. 온나가타로서 육체는 그저 가짜 세계를 담아내는 그릇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키쿠오가 하얀 분장을 하고 무대에 오르는 순간, 그는 '남자인 내가 남자의 시선으로 여자를 연기하며 사랑받는다'는 기묘한 역설 속에 자신을 가둡니다. 이 구조가 바로 키쿠오 자신의 내면과 완벽하게 겹쳐지는 지점이었습니다.

성공은 잔인하도록 외로웠습니다. 동료들은 시기했고, 연인은 지쳐 떠났으며, 친딸마저 그를 무대 위의 괴물로 외면했습니다. 그는 "악마와 계약했다"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 말은 온전히 사실이었습니다. 최고의 온나가타가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였습니다.


퀴어서사 

일반적으로 이런 영화는 카인과 아벨식 라이벌 서사로만 소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이 작품은 그 선을 꽤 의도적으로 넘나들었습니다. 료 요시자와가 연기한 키쿠오와 류세이 요코하마가 연기한 슌스케, 두 배우의 관계는 처음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둘이 멱살을 잡고 싸우는 장면에서 저는 순간 '이거 연인들 싸우는 장면 아닌가?' 싶었습니다.

키쿠오가 완벽한 여인이 되어 무대를 지배할 때 슌스케가 보내는 시선은 분명 질투처럼 시작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매혹으로 읽힙니다. 이 시선의 결을 동성 간의 애정으로 해석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봤습니다. 영화가 그 선을 명확히 긋지 않기 때문에 더 오래 마음에 남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학술적으로 가부키의 온나가타는 젠더 수행성(gender performativity) — 쉽게 말해 성별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행위와 표현을 통해 구성된다는 개념 — 과 자주 연결되어 논의됩니다. 키쿠오의 이야기는 그 이론이 살과 피를 입은 서사였습니다.

당뇨 합병증으로 다리 한쪽을 잃은 채 돌아온 슌스케와, 인간국보가 된 키쿠오가 다시 《사랑의 자살》 무대에서 마주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긴 여운을 남긴 순간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몸짓은 더 이상 경쟁이 아니었습니다. 서로의 결핍과 상처를 껴안는, 뭐라 단정 짓기 어려운 감정의 춤이었습니다. 그 공연 장면은 말 그대로 넋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연기와 연출 

3시간짜리 영화가 지루하지 않으려면 중간중간 숨구멍이 있어야 합니다. 이 작품에서 그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실제 가부키 공연 장면들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어도 저절로 시선이 빨려 들어갔습니다. 이상일 감독은 가부키 무대를 그냥 배경으로 쓰지 않고, 서사의 감정을 무대 위에서 다시 한번 육화 시키는 방식으로 연출했습니다. 

료 요시자와의 연기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하얀 분장을 한 채 움직임 하나하나로 여성의 영혼을 표현하는 장면에서, 저는 그게 연기라는 사실을 몇 번이나 잊었습니다. 하얀 분장 틈새로 흘러내리는 눈물 연기는 오랫동안 가슴을 아리게 했습니다. 류세이 요코하마 역시 만신창이가 된 슌스케를 연기하면서 배우로서의 불꽃을 태우는 장면이 진심으로 설득력 있었습니다. 두 배우 모두 이 작품을 위해 혼을 갈아 넣었다는 표현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요시다 슈이치의 원작 소설은 2018년 출간된 방대한 분량의 작품으로, 나오키상 수상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 방대한 원작을 각본가 오쿠데라 사토코가 영화적 언어로 압축했고, 이상일 감독이 시각으로 풀어냈습니다. 결과적으로 일본 역대 실사 영화 흥행 1위, 일본 오스카(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 부문 공식 출품이라는 기록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수치들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보고 나면 납득하게 됩니다.

 

정리하면, 《국보》는 단순한 예술 영화나 전기물이 아닙니다. 복수, 혈연, 젠더 수행성, 퀴어적 긴장감이 가부키라는 틀 안에서 50년의 시간에 걸쳐 층층이 쌓입니다. 노년의 키쿠오가 "오직 감사뿐"이라고 담담하게 고백할 때, 저는 그 미소 뒤에 고여 있을 피눈물들을 생각했습니다. 하얀 분장은 아름다움의 상징이자 자기 자신을 지워야만 살아남는 예술의 잔인함을 동시에 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