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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통의 문자가 두 사람의 4년을 갈라놓았습니다. 영화 <가을의 마티네>를 봤을 때, 저는 그냥 러브스토리인 줄 알았습니다. 결국 '시간'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후쿠야마 마사하루와 이시다 유리코가 만들어낸 이 조용하고 쓸쓸한 이야기는, 보고 나서도 한참 동안 마음에 남았습니다.

가을의 마티네 (엇갈린 사랑, 시간의 무게, 재회)
가을의 마티네 (엇갈린 사랑, 시간의 무게, 재회)


엇갈린 사랑 

마키노 사토시는 13세에 기타를 시작해 20세에 뉴욕에서 데뷔한 클래식 기타리스트입니다. 마키노가 세계적인 공연장에서 박수를 받으면서도 내면적으로는 공허함을 안고 살았다는 설정이 그래서 납득이 됐습니다.

그런 그에게 요코가 나타납니다. 파리에 거주하는 저널리스트이자, 우연히도 마키노가 OST에 참여한 영화감독의 딸이었죠. 처음 만남부터 두 사람 사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자연스러움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느낀 건, 화려한 연출 없이도 두 사람의 온도 차가 화면에서 그대로 전해진다는 점이었어요.

문제는 요코에게 이미 약혼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키노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파리까지 찾아가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당신의 존재 자체가 내 인생을 관통해버렸다"는 그 대사는 과장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영화에서의 표정이나 분위기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저도 그 부분에서 강하게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저 정도의 강렬한 고백을 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코 역시 같은 마음이었고, 두 사람은 다시 만나기로 약속합니다. 이제는 정말 잘 될 것 같았는데, 그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시간의 무게 

요코가 마키노를 만나기 위해 일본으로 향한 날, 마키노의 스승이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급박한 상황이었고 마키노는 병원으로 달려가면서 택시에 휴대폰까지 놓고 내리고 말았죠.

바로 이 틈을 사나에가 파고듭니다. 마키노를 오래전부터 사랑해 온 그의 매니저는 택시 회사에서 휴대폰을 찾아 두 사람 사이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요코에게 마키노인 척 문자를 보냅니다. 결국 요코는 마키노가 마음을 돌렸다고 믿었고, 마키노는 요코가 스스로 떠났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싸운 것도 아니고, 마음이 변한 것도 아닌데 단 한 번의 거짓 메시지가 이렇게 긴 이별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했습니다. 그 감정이 영화가 의도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저는 이 부분에서 꽤 오래 멈춰 있었습니다.

4년 후, 마키노는 사나에와 결혼해 딸을 두었지만 무대에는 단 한 번도 서지 못했습니다. 요코 역시 약혼자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지만 이혼을 준비하는 중이었고요. 겉으로는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 모두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파리와 일본을 오가며 펼쳐지는 가을 풍경이 그 공허함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재회를 향해

스승의 죽음이 계기가 됐습니다. 마키노는 추모 앨범 작업을 시작하면서 다시 기타를 잡게 됩니다. 마키노에게는 단순한 음반 작업이 아니라 4년간 멈춰 있던 자신의 음악을 다시 꺼내는 의식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같은 시기, 사나에는 뉴욕에 있는 요코를 직접 찾아갑니다. 4년 전 자신이 한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사과하면서, 새로 제작한 CD 한 장을 건넵니다. 그리고 몇 달 뒤 열리는 마키노의 뉴욕 공연에 와달라고 말합니다. 이런 장면은 "착한 결말을 위한 억지 설정"처럼 느껴지기 쉬운데, 이 영화에서만큼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나에가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알면서도 4년을 버텨온 사람이라는 게 그 장면에서 묵직하게 전해졌습니다.

CD 케이스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사람은 바꿀 수 있는 건 미래뿐이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과거도 미래에 의해 항상 바뀌고 있는 게 아닐까요?" 이 문장이 영화 전체의 메시지를 압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과거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뜻이죠. 요코가 그 CD를 만지작거리던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크게 울린 순간이었습니다.

한편, 마키노도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됩니다. 싱크대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유리컵을 깨며 피까지 흘리지만, 그다음 장면에서 가족은 이전과 다름없이 단란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 감정의 온도차가 오히려 더 서늘하게 느껴졌습니다.


마티네 공연

마티네(matinée)는 프랑스어 '마탱(matin)', 즉 아침·오전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오전이나 낮 시간대에 열리는 공연을 뜻하는데, 밤 공연과 달리 공연이 끝나도 밖은 여전히 환하고 밝습니다. 영화 원제인 <After the Matinée>가 단순한 배경 설명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이라는 걸, 엔딩을 보고 나서야 실감했습니다.

마키노는 수년 만의 복귀 콘서트를 자신이 데뷔했던 뉴욕의 공연장에서 엽니다. 그리고 마지막 곡으로 원래 예정에 없던 곡, '행운의 동전'을 연주합니다. 이 곡은 요코의 아버지가 만든 영화 제목에서 따온 것입니다. 두 사람의 인연이 처음 시작된 지점으로 돌아가는 선택이었죠.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느낀 건, 마키노가 요코에게 보내는 공개적인 신호이자 4년간의 공백에 대한 응답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객석에는 요코가 앉아 있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 두 사람은 뉴욕 센트럴 파크 호수 근처에서 다시 마주합니다. 영화는 그 이후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결혼을 했는지, 어떻게 살게 됐는지 알려주지 않아요. 서로를 알아보고 웃는 얼굴만 남겨둔 채 끝납니다.

그래서 더 좋았습니다. 이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건 결말이 아니라, 너무 늦기 전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는 그것 자체였으니까요.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요코의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설정은 솔직히 좀 과하게 느껴졌습니다. 요코가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 너무 많은 장치를 넣어둔 것 아닌가 싶었거든요. 감독이 설명하려는 것이 조금만 줄었더라면 더 여운이 깊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가을의 마티네>는 사랑 영화처럼 시작해서, 끝나고 나면 시간에 관한 영화였다는 생각이 남습니다. 두 사람은 배신하지 않았고 마음이 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죠. 그 안타까움이 영화 내내 쌓이다가 마티네 공연 이후의 밝은 낮 한 장면에서 조용히 풀립니다.

파리와 일본의 가을 풍경 속에서 절제된 감정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이 작품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주연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가 좋았습니다.